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은 없다.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는 이런 얘기들로 가득 차 있다. 52가지 소주제들로 나눠 정리한, 소소해 보이지만 미국의 낭패가 훨씬 더 실감나게 느껴지는 이런 현상들은 물론 지은이 자신이 모두 직접 체험한 것은 아니다. 김광기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뉴스위크>, <로이터>, <블룸버그>, CNN, CBS, 폭스비즈니스 등 수많은 언론 매체와 자료들을 동원한다. 이런 방식이 새로운 건 아니다. 미국의 현실을 진단하는 많은 보고서들이 이와 비슷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2010년 연간 국내 총생산(GDP) 14조6600억 달러. 이 규모를 능가하는 과도한 국가 부채, 연간 1조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재정 적자, 그것을 임시변통으로 메우기 위한 부채(국채 발행 등) 상한 상향조정을 둘러싼 여·야 간 물불 가리지 않는 정쟁. 그 때문에 국가 신용 평가 등급이 떨어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빚은 데다 앞으로도 사정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니 미국 몰락 얘기가 더는 새삼스러울 게 없을 지경이 됐다.
물론 그래도 그건 헛소리다, 미국은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강이다, 어렵지만 패권을 유지할 것이다, 라는 얘기도 한 곳에선 무수하다. 어느 쪽 얘기가 맞을까?
사회학자 김광기의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동아시아 펴냄) 제1장 '경제 위기로 구겨진 미국인의 자존심' 중의 첫 번째 얘기는 '아스팔트에서 자갈로 탈바꿈하는 미국의 프리웨이'다. 거기에 사진 한 장이 실려 있다. 출처가 <월스트리트저널>이고, "노스다코타 주의 제임스타운에서 아스팔트 도로를 파헤치고 대신 자갈을 깔고 있는 모습"이란 설명이 붙었다.
아득하게 뻗어나간 도로 중간에 도로 포장 차량들이 열심히 자갈을 깔고 있는데, 아스팔트를 입히기 위한 작업이 아니다. 있던 아스팔트를 아예 걷어내고 자갈로만 포장하는 것이다. 아스팔트는 오래되면 갈라지거나 패이기 때문에 걷어내고 다시 깔든지, 손상된 부분만 땜질하거나 윗부분만 살짝 깎아내고 덧칠하든지 해야 한다. 계속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돈이 많이 든다. 아스팔트를 자갈로 교체하는 건 그럴 돈이 없기 때문이다. 아스팔트를 그냥 내버려둬도 역청 성분이 빠져나가 결국 자갈길이 되고 말겠지만, 고르게 같은 속도로 분해되진 않는다. 그래서 완전히 자갈길로 분해되기까지 오랜 기간 여기저기 다른 모양으로 패이고 찢긴 상처들로 누더기가 되어 오히려 비포장도로보다 못한 길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내버려둘 순 없다. 아스팔트가 필요 없는 자갈길로 만드는 게 가장 손쉽다.
이런 한심한 일이 노스다코타 주 어느 한 곳에서만 일어났다면 그럴 수도 있겠군, 하겠지만 그게 아니다. 사우스다코타, 앨라배마,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주에서도 일어났고 미시간 주에서는 83개 군 가운데 무려 38개 군 아스팔트길이 자갈길로 바뀌었다. 이런 현상을 두고 대학에서 세미나까지 열렸다는데, 세미나 이름이 '석기 시대로의 귀환(Back to the Stone Age)'이었다나.
지은이가 이 얘기를 제1장 처음에 실은 이유를 짐작하겠다. 지금의 미국 꼴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데 이만한 얘기가 없을 것이다. 그가 아스팔트길을 자갈길로 바꾸는 미국의 변화를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건 그렇지 않았던 미국, 이런 꼴이 되기 전의 미국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변화의 깊은 내면까지 더욱 선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하와이와 보스턴에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유학 생활을 했고, 이 책의 구상을 구체화한 2008년 초, 미국이 금융 공황의 해일 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그 시기에 시애틀에서 연구 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유학 시절과 연구 년을 보내던 시절 및 그 이후의 시간적 간격을 사이에 둔 미국의 극적인 변화를 미국 현장에서 체험했다.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는 책 제목의 '우리가 아는 미국'이란 김광기가 유학 시절 체험했던 미국, 대한민국 대다수 사람들이 여전히 그럴 것이라고 상상하는 미국이다. 그 시절 김광기는 "이를테면 서부의 시애틀에서 동부의 끝 보스턴으로 가려면 고속도로 90번을 타면 되고, 보스턴에서 95번을 타고 남쪽 끝까지 가면 대문호 헤밍웨이가 살면서 집필하던 플로리다 주 키웨스트에 갈 수 있던" 사통팔달의 전국 고속도로망, 거의 공짜로 이용할 수 있었던 그 '자유로(free way)'의 위용 앞에 기가 팍 죽었다.
그랬던 미국 도로들이 지금 아작 나고 있다. 돈이 없어서! 제1장 네 번째 얘기는 '닭은 한 마리만 키우도록!'이다. 로스앤젤레스(LA) 시의회가 2009년 9월에 통과시킨 조례 내용이 그렇다. LA 가정집에서 닭을 키우다니? 그렇다. LA뿐만 아니라 뉴욕에서 시카고 교외 그리고 광대한 서부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역에서 닭 키우기 열풍이 불고 있단다. 이게 미국 중산층의 현실이다.
전례 없던 일이다. 하도 극성이라 연간 한 마리 이상 키우면 안 된다는 제한 규정까지 만든 것이다. 왜 닭인가? 육우 고기, 즉 쇠고기야말로 미국인의 주식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이 역시 돈 때문이다. 소득이 쪼그라든 서민들이 인플레로 더 비싸진 쇠고기를 예전처럼 마음껏 먹을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미국 육우 사육수도 줄어들고 있다. 소비가 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대신 캠핑이나 오지 탐험용 비상 식품쯤으로 외면 받던, 싸구려 스팸 소비가 늘고 스팸 제조 회사 주가가 상종가를 치고 있단다.
그런데 닭 키우는 붐이 인 건 돈 때문만은 아니란다. 실은 이게 더 문제다. 미국이 심각한 상태라는 건 단지 수치로 드러나는 경제적 퇴락, 생활수준 저하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다. 지금 미국 사람들은 닭과 총, 그리고 농작물 씨앗을 구입하려 안달이란다. 모두 유사시를 대비한 비상 방책과 연관이 있다.
그냥 생활이 예전보다 좀 쪼들려 그런다는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여차하면 국가의 보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홀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심리적·물질적 위기감을 거기서 느낄 수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상정한 이런 최후의 생존 전략까지 짜야 할 정도로 지금 미국이란 사회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며 불안하다고, 그리고 적어도 예측 가능한 미래까지 이런 상황이 개선되기보다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미국인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한적한 변방이 아니라 LA나 뉴욕, 시카고 같은 대도시 주민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돈이 없어서 교도소 수감 죄수들마저 형기를 마치기 전에 조기 석방을 시키고 있다. 관리비 아끼려고. 우리 정부도 얼마 전 선진화 표본으로 선전한, 교과서를 전부 디지털화해 종이 교과서 없는 학교 만들기라는 게 있는데, 영화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지사를 지낸 캘리포니아 주가 바로 그런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의 교과서 디지털화는 선진화 사업이 아니다. 오직 종이 교과서 찍는 데 들어가는 돈을 감당할 수 없어서 내놓은 고육책일 뿐이다. 이 정도면 자존심 구겨지는 정도의 차원을 넘어선 것 아닌가?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는 이런 얘기들로 가득 차 있다. 52가지 소주제들로 나눠 정리한, 소소해 보이지만 미국의 낭패가 훨씬 더 실감나게 느껴지는 이런 현상들은 물론 지은이 자신이 모두 직접 체험한 것은 아니다. 김광기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뉴스위크>, <로이터>, <블룸버그>, CNN, CBS, 폭스비즈니스 등 수많은 언론 매체와 자료들을 동원한다. 이런 방식이 새로운 건 아니다. 미국의 현실을 진단하는 많은 보고서들이 이와 비슷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미국이 망할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이유 : 가불 경제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는 먼저 속으로 골병든 미국 사회의 적나라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그런 현상을 초래한 주 정부 등 지방자치단체들의 세수 고갈과 빚더미, 더 심각한 연방정부 재정 상태를 살핀다. 그런 다음 지은이는 왜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방치됐는지 사회학적 시선으로 병인을 진단한다. 원인은 미국을 미국이게 했던 정신과 가치관을 잃어버린 것이란다. 그 결과 실력주의를 자랑하던 미국이 간판,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로 뒷걸음질치고, 제 것만 챙기는 부도덕한 지도층의 부패와 양극화 속에 나만 잘 살면 된다는, 미국 사회의 '제3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더욱 암담하게도, 그럼에도 이런 퇴락을 저지할 내부 동력 또한 가속적으로 고갈되고 있다.
이거 남의 얘기가 아닌 것 같은데. 얄궂게도, 지금 한국 사회 주류 세력은 바로 이런 미국을 좀 더 확실하게 본받고 닮지 못해 '한국병'이 생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은이가 보기엔 차라리 한국 사회가 어떤 면에선 미국 사회보다 더 낫다.
지은이가 이 책 후기를 쓰던 올해 8월까지 챙긴 미국 사회 지표들은 정말 한심하다.
금융 위기 이후 노숙자가 30퍼센트나 늘었다. 2009년 156만으로, 미국인 200명 가운데 1명꼴이다.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를 나온 미국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려고 줄줄이 한국행을 택하고 있다. 월 2000달러(약 200만 원)를 받는 영어 강사가 되려고.
미국 전체 기업 주식의 83퍼센트를 상위 15퍼센트가 독차지하고 있다. 2001년 통계인데, 미국이 이런 꼴로 확 바뀐 게 2001년 9·11 사태 이후, 특히 2008년 금융 공황 이후라고 한 김광기의 지적으로 미뤄보건대, 지금은 부익부빈익빈의 정도가 훨씬 더 심화됐을 것이다. 2001~2007년 사이 미국 소득 증가분의 66퍼센트를 상위 1퍼센트 부자들이 싹쓸이해 갔다. 미국인 하위 소득자 50퍼센트가 나눠 쓰는 건 미국 전체 부의 1퍼센트 미만이다. 2009년 미국인의 61퍼센트가 '항상'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처지다. 실직하면 바로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책 출간 뒤에 나온 거지만, 미국통계국이 9월 13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빈곤율(최
저 생계비에 못 미치는 소득 가구 비율)은 15.1퍼센트다. 빈곤층 분류 인구 4620만 명은 돈이 없어 의료 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한 5000만 인구와 거의 겹친다. 한국 총인구에 해당하는 미국인이 병원에도 갈 수 없다. 지난해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미국 남성 노동자의 중간 소득은 30여 년 전인 1978년보다 못한 수준으로 후퇴했다. 일반 가정의 실질 소득도 15년 전인 1996년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면, 노후 대비 연금 저축을 하지 못하는 미국인이 36퍼센트나 되고, 2010년에 150만 명이 파산했다. 같은 해 무상 지원 식권(푸드 스탬프)을 받는 사람이 4000만 명이었으나 올해는 4330만이 될 걸로 예상된다. 2009년 미국인 8명 중 1명이 정부 지원을 받았으며, 그들 중 600만 명은 푸드 스탬프 없으면 굶어야 할 사람들이었다. 그 수가 최근 2년 만에 배로 늘었는데, 2010년엔 식량 보조를 받는 사람이 4명에 1명꼴이었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파산 이후 10가구 당 1가구가 대부금 납부 연체로 당장 집을 압류당할 처지에 몰려 있다.
연간 실업률 9.7퍼센트. 구직 단념자까지 포함한 실업률은 2009년 10월에 17.5퍼센트까지로 치솟았다. 비정규직과 불완전 고용을 포함하는 실질 실업률은 5명 가운데 1명꼴인 20퍼센트에 육박한단다. 실직을 면해도 일반 회사원과 임원이 받는 봉급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1950~60년대엔 그게 평균 1대 5~30이었으나 2000년 이후에는 1대 300~500이 됐다. 이는 중산층의 몰락과 연결돼 있다.
2011 회계 연도(2010년 7월~2011년 6월) 미국 주 정부들의 총 재정 적자는 5000억 달러(약 600조원). 더 급한 불은 주 정부 재정 적자에도 포착되지 않는 연체된 공공 기금 1조 달러(약 1200조 원). 지방자치단체들이 이렇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으니 주 정부 재정 지원으로 운영되던 비영리 복지 시설 등에 돈이 가질 않아, 예컨대 일리노이 주의 복지 시설 소속 어느 약사가 주 정부로부터 개인적으로 받아야 할 밀린 제약비가 20만 달러(약 2억4000만 원)나 됐다. 이런 형편이니 약국과 병원이 받지 못한 진료비와 약값은 얼마나 되겠나. 양로원, 장애인 시설 등 일리노이 주 2000여 개 비영리 복지 시설에 주기로 한 지원금만 110억 달러나 밀렸단다. 주 정부를 맡은 정치인·관료들이 흥청망청 재정을 축내고도 표를 의식해 실상을 숨긴데다, 경기 악화로 세수 결손이 커지고, 적자를 보전해줄 연방 정부마저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앉으면서 참상은 확대일로다.
주 정부는 법적으로 파산이 금지돼 있으므로, 어떻게든 정부를 꾸려가려면 쥐어짜듯 재정 지출을 줄이면서 연방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의욕적으로 벌였던 대형 사업들이 돈을 못 대 나자빠지고, 교도소 수형자들은 조기 석방해야 하며, 공립학교 교사들을 마구 잘라낼 수밖에 없다. 2010년 캘리포니아 교육청은 교사 2만2000명을 해고 했고, 일리노이 주는 1만7000명, 뉴욕 주는 1만5000명 감원을 예고했다. 전국적으로 그해 한 해에만 10~30만 교사가 해고될 것이라 했다. 이 때문에 미국 공립학교 한 반 학생 수는 15~20명이었는데, 이젠 30명을 훌쩍 넘겼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주4일제 수업을 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교육의 질 저하다. 이것이 미국의 퇴락을 저지할 인적 자원의 손상으로 연결돼 퇴락의 가속화에 일조하고 있다.
올해 이미 연간 GDP 규모인 14조 달러를 넘어섰고, 10년 뒤엔 무려 21조 달러(약 3경246조 원)로 빚이 늘어난다는 연방정부. 순전히 빚에 대한 이자로만 2009년에 2020억 달러 그리고 2019년까지 해마다 5000억 달러, 2019년에는 7000억 달러 이상을 지불해야 할 연방 정부 사정으로 보건대 이런 퇴락을 막을 획기적 방안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 방법은 세금을 더 많이 걷고 감당하기 힘든 빚부터 갚아나가면서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이는 대신 긴급한 곳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채 상한 상향 조정을 둘러싼 정쟁 중에 재확인됐지만, 세금을 더 내야 할 부자들은 자신들을 대변하는 정치인들, 주로 '티 파티'가 상징하는 공화당 꼴보수 국회의원을 앞세워 증세 절대 불가를 고집하고 있다. 여기에 공황적 불경기에 자살 행위가 될 수 있는 정부 재정 지출 삭감(이것도 공화당이 끝까지 고집했다)까지 가세하는 최악의 조합이 지금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당을 앞세운 미국 사회의 계급 분열과 대립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만하다. 증세하지 않고 재정 지출까지 삭감하면 경제가 쪼그라드는 건 필연인데, 공화당 보수 우익이 설마 미국의 과잉 소비와 경제 규모를 줄여 지구 온난화를 저지하겠다는 부처님 마음이 갑자기 생겨 그랬겠나.
이런 게 다 '가불 경제' 구조 때문이란다. 예상되는 미래의 늘어날 수입을 상정해 놓고 그것이 현실화하지도 않은 지금 그 예상 소득 수준에 맞춰 미리 펑펑 소비하는 경제다. 세제도 사글세로 사는 사람보다는 자기 집을 가지고 펑펑 쓰는 자에게 유리하게 돼 있다. 집을 살 땐 집값의 20퍼센트 정도만 은행 융자를 받아 먼저 지불하고, 나머지는 거의 평생에 걸쳐 조금씩 갚아나간다. 예전의 미국사회에는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용으로 집을 사고파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제 그런 전통이 허물어졌다.
투기는 2008년 금융 공황을 초래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부동산 투기 붐, 월스트리트 금융 자본이 온갖 파생 금융 상품을 만들어 떼돈을 벌면서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갚을 능력도 없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집을 살 수 있도록 융자해 주고 그것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온갖 파생 상품을 만든 약탈적 서브프라임모기지 붐 때 그 절정에 이르렀다.
거의 무일푼으로 집을 살 수 있었고, 집값은 올라갔고 더 오를 것으로 전망했기에 사람들은 미래의 집값 상승분을 현재의 소득으로 간주하고 펑펑 썼다. 원리금을 갚지 못해 집을 압류 당하게 되면 집을 버리면 그만이었다. 애초에 자신이 들인 돈이 거의 없어, 집 구입자가 날릴 돈은 그때까지 물어온 이자 정도밖에 없다. 게다가 미국에선 은행 빚으로 빌린 집값이 뚝 떨어져도 그 차액(채권자 손실분)을 갚을 의무가 없다. 예컨대 1억 원짜리 집을 담보로 8000만 원을 대출받았는데 집값이 5000만 원으로 떨어졌을 때 집을 포기하고 채권자에게 넘겨도 차액 3000만 원을 갚지 않아도 된다. 이 때문에 부자들조차 이런 제도를 악용한 '전략적 체납' 대열에 합류하는 도덕 불감증, 도덕적 해이가 만연했다. 오직 쓰는 놈, 더 많이 쓰는 놈이 장땡이 되는 구조.
미국이 망할 수밖에 없는 두 번째 이유 : 가치 실종
위에 열거한, 미국의 경제적 쇠락을 보여주는 통계 수치들 중 상당수는 사실 새로울 게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많이 보아온 것들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충격적이지만, 지은이는 미국을 나락으로 몰아가는 더 심각한 요인을 경제 외적인 데서 찾는다. 그가 미국의 퇴락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 추세라 보는 것도 경제 외적인 이유 때문이다. 더 결정적이고 핵심적인 요인은, "미국인만이 가진 그리고 미국인만이 소유한 소중한 무엇이-이념이든 문화든 습속이든 뭐든 상관없이-사라져 간다는 것이다."
그 첫째가 '신뢰의 증발'이다. 예컨대 한국이 혈연·지연·학연으로 상통하지만 그 바깥에 대해서는 철저히 배타적인 '확신(confidence)'의 사회라면, 예전의 미국은 그런 인연들을 초월해 믿음과 실력과 성실만으로도 온갖 차이를 넘어 다양하게 어울릴 수 있는 '신뢰(trust)'의 사회였다. 그래서 김광기는 유학 시절 주유소에서 돈 지갑을 갖고 나오지 않았는데도 우선 자동차에 기름을 넣을 수 있었고, 학벌이나 피부색 차이 때문에 불이익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랬던 미국이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빵에 썩은 땅콩버터를 넣어 떼돈을 벌려 안달하는 사회가 됐고, 기내식이 식중독을 일으킬 정도로 위생 상태가 형편없는 항공사들이 수두룩해졌으며, 심지어 유해 항생 물질과 농약, 중금속이 다량 함유된 육류를 내놓고 파는 사회가 됐다. 멕시코로 수출한 미국 쇠고기가 불량 판정을 받아 반품됐는데, 그게 미국 슈퍼마켓에서 버젓이 판매될 지경이다. 살충제 등의 유해 성분들이 나온 의약품과 건강 보조 식품, 사서 입다 반품한 여성 속옷을 세탁도 하지 않고 하루 정도 걸어뒀다 냄새가 빠지면 다시 포장해서 팔다가 적발된 얌체 상혼 등등 미국의 '제3세계화'가 눈부시다.
예전에 진학이나 취직을 할 때 일반적으로 통용됐던 학교장 추천서도 이젠 한국처럼 불신을 살 정도로 남·오용되고 있다. 객관적 수치를 들이대는 '스펙' 쌓기가 유행하고 승자만이 찬사를 받는다. 또 그 때문에 학점 인플레와 유력자 자식 봐주기, 성적 따기 부정행위, 약물 복용, 학점 세탁, 입시 청탁이 연쇄 반응처럼 등장한다. 결국 어느 대학 출신인지 관심도 없던 미국 사회가 실력이 아니라 간판과 학벌을 앞세우는 우승열패의 승자독식 사회가 돼 가고 있다. 공교육이 부실화하고 학원까지 번성한다. 미국의 한국화라 해야 할까.
승자독식의 비정과 양심 불량의 부도덕이 횡행하는 미국 사회의 축도가 월스트리트다. 예컨대 금융 공황 대책 최전선에 섰던 재무장관 헨리 폴슨은 골드만삭스 회장 출신이고, 백악관 비서실장 조슈아 볼턴,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로버트 루빈 등도 골드만삭스 최고위직에 있었다. 또 한 사람의 골드만삭스 출신으로 루빈 뒤를 이어 재무장관을 지내고 하버드 대학 총장까지 한 래리 서머스는 오바마 정부 국가경제위원장이 됐다. 지금 재무장관 티머시 가이트너는 서머스의 제자다. 폴슨은 루빈의 제자고 서머스 또한 루빈의 후배다. 루빈은 골드만삭스를 거쳐 재무장관이 됐고, 그 뒤엔 시티그룹 선임고문이 됐다. 그리고 1년 만에 다시 월가의 소형 투자은행인 센터뷰 파트너스로 갔다. 그는 시티그룹을 위기로 몬 장본인으로 지목됐으나 연봉을 1500만 달러나 받았다. 재벌 금융사 고위직에 있다가 정부 고관이 되고 퇴직 뒤 다시 재벌사 고연봉자로, 그리곤 때가 되면 다시 정부 요직으로 돌고 도는 회전문인사로 단물만 빨아온 부도덕한 졸부들이 미국을 망치고 있다.
이들이 망해가던 골드만삭스, AIG, GM, 시티그룹 등에 천문학적인 국민 세금(공적 구제 자금)을 쏟아붓는데 앞장섰다. 시티그룹의 경우 두 차례에 걸쳐 모두 450억 달러나 되는 구제 금융을 근거도 없이 받은 데다 역시 근거 없이 380억 달러에 이르는 세금 감면까지 받았다. 그런 특혜를 받은 시티그룹이 2009년 CEO에게 준 연봉은 무려 3000만 달러였다. AIG도 받은 구제 금융으로 거액의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가 집중 성토를 당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엄청난 손실과 그에 따른 다량 해고와 수많은 가정 파탄을 초래한 죄로 형사 처벌을 받은 금융업자는 한 명도 없다. 금융 재벌들은 공황을 일으켜 서민들을 벼랑으로 몰았고, 공황 발생 뒤에는 어마어마한 구제 금융으로 또다시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었다. 그리고 지금도 떵떵거리며 산다.
글로벌 스탠더드, 인권 종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력주의 등 한때 미국을 장식했던, 한국 언론들이 바보처럼 지금도 그렇다고 상찬해마지 않는 미국적 가치들은 이미 옛말이 돼가고 있다.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에서 사회학자 김광기가 미국 몰락의 핵심 요인으로 꼽은 게 바로 이것이다. 그가 미국이 조만간 예전 모습으로 재생할 가능성에 대해 지극히 회의적인 이유도 경제 외적 요소, 정신과 가치관과 도덕성의 퇴락이다.
미국이 망할 수밖에 없는 세 번째 이유 : 비판 부재
김광기의 생각을 더욱 회의적인 쪽으로 잡아끄는 게 또 있다.
그것은 이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이며 파괴적인 승자독식 우승열패의 지옥으로 변해가는 미국 사회에 대해 누구도 나서서 이의를 제기하고 성토하며 저항하지 않는,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예전의 미국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광기는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을 무엇 하나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한 채 순종적인 예스맨들만 양산하는 퇴락한 공교육과 권력을 향해 용비어천가만 불러대는 언론 탓으로 돌렸다. 이쯤 되면 이게 미국인지 한국인지 더욱 헷갈린다. 김광기는 그래도 불량한 강자들에 대들 줄 아는 한국이 차라리 좀 더 희망적이라고 얘기한다.
이렇게 보면 미국은 분명히 망해가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그러면 미국이 예전의 그 가치들, 도덕성을 회복하면 재생할 수 있을까? 예전의 미국적 가치라는 게 과연 보편타당한 것이었을까? 혹시 그런 가치 때문에 미국이 흥한 게 아니라 흥했기 때문에 그런 가치가 만들어진 건 아닐까? 미국적 가치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초대국적 경제력이 경쟁자들의 등장과 피할 수 없는 내부 동맥경화로 오래 지속될 수 없듯이 언젠가는 사그라질 운명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지구가 몇 개 있어도 모자란다는 미국적 과잉 소비와 약탈적 패권 유지를 막기는커녕 결과적으로 그것을 방조하거나 심지어 부추겼다면, 차라리 패권과 더불어 사라지는 게 낫지 않을까?
/한승동 <한겨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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