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킴 [726956] · MS 2017 · 쪽지

2019-01-29 21:3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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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요청)(스압)코드킴의 인문논술 칼럼 - 5, 2014 연세대 인문 논제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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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연세대학교 인문 해설.pdf

안녕하세요. 아직까지도 24세 무직 고졸 아싸 군면제인 코드킴입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논술은 모호해요~ 소릴 해서 개빡쳤습니다.


해설로 보여드릴테니 잘 보세요.


가독성을 위해 pdf 파일도 올려둡니다.


pdf파일로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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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연세대 인문 논제, 제시문


※ 아래 제시문 (가), (나), (다), (라)를 읽고 문제에 답하시오. 


제시문 (가) 


 수백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한 책임자인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 숨어 살다가 이스라엘 비밀 정보기관에 의해 납치되어 예루살렘 의 법정에 서게 되었다. 


 검사: 피고인의 본명은 칼 아돌프 아이히만, 1939년에서 1945년까지 나치스 계획의 집행 책임자로서 유태인 학살을 지휘했습니다. 피고인에 대한 증인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증인: 제가 본 피고인은 유태인을 미워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유태인 이민자들을 위해 직업학교도 세우는 등 개인적으로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만....... 

 검사: 그렇다면 왜 유태인 학살을 지휘했습니까? 

 아이히만: 저는 단지 국가의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그것은 저의 임무였으며, 저는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성실히 노력했을 뿐 입니다. 

 검사: 수백만 명의 아이들과 남녀를 죽음으로 몰아간 책임자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나요? 

 아이히만: 제가 만약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거나 소홀히 했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입니다. 



제시문 (나) 


포스터 속에 들어 앉아
비둘기는 자꾸만 곁눈질을 한다.
포스터 속에 오래 들어 앉아 있으면 비둘기의 습성(習性)도 왠만치는 변한다. 비둘기가 노니던 한때의 지붕마루를 나는 알고 있는데
정말이지 알고 있는데
지금은 비어 버린 집통만
비바람에 털럭이며 삭고 있을 뿐이다. 포스터 속에는
비둘기가 날아 볼 하늘이 없다.
마셔 볼 공기(空氣)가 없다.
답답하면 주리도 틀어 보지만
그저 열없는 일
그의 몸을 짓구겨
누가 찢어 보아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다.
불 속에 던져 살라 보아도
잿가루 하나 남지 않는다.
그는 찍어낸 포스터
수많은 복사(複寫) 속에
다친 데 하나 없이 들어 앉아 있으니 차라리 죽지 못해 탈이다. 



제시문 (다)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 뤼카온은 아킬레우스에게 사로잡힌 뒤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그에게 아킬레우스가 이렇게 말 한다.) 


“자. 친구여, 그대도 죽을지어다. 왜 이렇게 비탄에 빠져 있는가? 

그대보다 훨씬 훌륭한 파트로클로스*도 죽었다.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나 또한 얼마나 잘 생기고 큰지?
나의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시고,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는 여신이시다. 

하지만 내 위에도 죽음과 강력한 운명이 걸려 있다. 

누군가가 창이나 또는 시위를 떠난 화살로
나를 맞혀 싸움터에서 나의 목숨을 빼앗아 갈 

아침이나 저녁이나 한낮이 다가오고 있단 말이다.” 

이렇게 말하자 뤼카온은 무릎과 심장이 풀어져 

잡았던 창을 놓고 두 팔을 벌리며 주저앉았다. 

그러자 아킬레우스가 날카로운 칼을 빼어
목 옆 쇄골을 내리쳤다.
......[중략]......
검은 피가 흘러내려 대지를 적셨다. 


  • 파트로클로스: 아킬레우스의 절친한 친구. 트로이아의 영웅인 헥토르에게 살해당했다. 




제시문 (라) 


 미국의 임상 심리학자인 에버렛 워딩턴은 1955년 어느 날 어머니가 무단 침입한 강도에게 살해당하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용서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학자인 워딩턴이었으나 그는 사건 현장을 보고 몸서리를 치며,“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하고 소리쳤다. 그는 분노 속에서 강도들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하면서 자신의 폭력적 본성과 죄성(罪性)을 깨달았다. “나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 워딩턴 교수는 그들을 용서하기로 결심했다.“누군가에게 살의를 품은 내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면, 이 딱한 아이들도 나의 용서를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그 후 그의 고통스러운 경험은 깊은 고뇌와 연구로 이어졌다. 그는 현재 교육과 연구, 저술과 상담을 통해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자세를 갖도록 돕고 있다. 





’공감’ 개념을 실마리로 삼아 제시문 (가), (나), (다)를 읽을 수 있다. (가)의 아이히만 및 (나)의 시적 화자의 태도와 비교하여 (다)의 아킬레우스가 뤼카온에 대해 보이는 태도의 특징들 중 가장 두드러진 점을 지적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를 제시하시오. (1,000자 안팎으로 쓰시오. 50점) 


*‘공감’(sympathy)이란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로, 본래‘타자의 감정이나 상태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상상’, ‘주체’, ‘폭력’ 개념을 모두 사용하여 ‘공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시오. 제시문 (가), (다), (라)의 사례를 활용하시오. (1,000자 안팎으로 쓰시오. 5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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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인문 해설


    논제 분석


‘공감’개념을 실마리로 삼아 제시문 (가), (나), (다)를 읽을 수 있다. (가)의 아이히만 및 (나)의 시적 화자의 태도와 비교하여 (다)의 아킬레우스가 뤼카온에 대해 보이는 태도의 특징들 중 가장 두드러진 점을 지적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를 제시하시오. (1,000자 안팎으로 쓰시오. 50점) 

*‘공감’(sympathy)이란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로, 본래‘타자의 감정이나 상태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1. (가), (나), (다)를 공감에 대하여 삼자 비교

2. 단, 각주를 사용해야 하며, (다)에서 두드러진 점을 찾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함.


’상상’, ‘주체’, ‘폭력’개념을 모두 사용하여 ‘공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시오. 제시문 (가), (다), (라)의 사례를 활용하시오. (1,000자 안팎으로 쓰시오. 50점) 


1.  ‘상상’, ‘주체’, ‘폭력’ 이 (가), (다), (라) 각 제시문에 어떻게 드러나는지 쓰기

2.  이하 해설 참조


    제시문 독해 - 논제의 주제인 ‘공감’, 그 각주를 사용해 독해


(가) - 아이히만의 유대인 학살과 재판(독해 범주의 행위를 이용하여)

 주체 - 아이히만

 배경  - 국가의 명령에 따름, 유대인들에게 공감하지 못함

 양상 - 유대인 학살을 지휘하게 됨

 결과 - 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함


 제시문 (가)는 재판의 대화록입니다. 글의 유형은 문학 작품에서의 극에 가까우나, 그냥 정리독해의 ‘행위’ 범주를 사용하여 글을 정리해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아이히만의 행위(학살이라는)에 집중되어 있으니, 이 글에서의 주체는 ‘아이히만’이라고 잡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아이히만은 유대인들을 학살한 이유를 ‘국가의 명령에 따랐기 때문에’ 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학살 지휘의 배경을 ‘국가의 명령에 따름’ 이라고 정리해줍니다. 양상은 당연히 ‘유대인 학살을 지휘함’이 될 것이며, 그 결과는 참혹한 학살로 정리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제시문들을 ‘공감’이라는 것으로 봐야하는 것도 잊어선 안 됩니다. 위의 주체, 배경, 양상, 결과 중, ‘공감’이 들어갈만한 자리를 살펴보시면 됩니다. 주체에는 공감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 보입니다. 양상이나 결과에도 공감을 넣기에는 조금 그렇습니다. 학살의 양상이나 결과가 공감의 유무가 되기보다는, 배경에 공감의 유무가 들어감이 적절해보입니다. 그러니, 아이히만의 학살이 유대인에 대한 공감의 결여로 인해 일어났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불확실할 수도 있으니 정합성 판단을 거쳐봅시다. 다음 두 명제 중에서 1이 들어갔을 때 제시문의 내용이 참이 되어야 하고 2가 들어갔을 땐 거짓이 되어야 합니다.


1. 아이히만은 유대인에게 공감하지 못했다.

2. 아이히만은 유대인에게 공감했다.


 여기에서 공감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논제의 각주로 등장하는 ‘타자의 감정이나 상태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다’ 라고 해야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타자’의 부분에 ‘유대인’을, ‘자기’의 부분에 ‘아이히만’을 넣는다면 적절할 것입니다. 


 1부터 살펴봅시다. 1의 내용을 논제에 대입해본다면 “아이히만은 유대인의 감정이나 상태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라고 바꿀 수도 있습니다. 아이히만은 분명 유대인을 학살했으니 그들의 감정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의 내용이 글의 새로운 전제가 되었을 때, 모순이 발생할 가능성은 아주 작은 것 같습니다.


 2를 살펴봅시다. 2의 내용을 논제에 대입해본다면 “아이히만은 유대인의 감정이나 상태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였다.” 라고 바꿀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히만이 유대인의 학살을 지휘하고 행한 것은 그들의 감정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그에게 유대인은 공감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국가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을 경우 느껴질 양심의 가책 때문에 행동한 것입니다. 

 이처럼, 1의 내용은 참이고, 2의 내용은 거짓이 되니 1의 내용을 새로운 전제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습니다.


 눈썰미가 좋은 분이시라면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점을 찾으셨을 겁니다. 제시문의 다음과 같은 내용 때문입니다.


증인 : 제가 본 피고인은 유태인을 미워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유태인 이민자들을 위해 직업학교도 세우는 등 개인적으로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만


 위의 부분 때문에 아이히만은 유대인들에게 조금은 공감한 게 아니냐?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각주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방금 1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만들었던 전제 하나를 다시 살펴봅시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의 감정이나 상태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의 학살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의 감정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아이히만은 절대로 학살을 일으켰을 리가 없습니다. 아이히만은 분명 공감이 결여된 것이 맞긴 합니다. 만일 아이히만이 유대인들에게 공감을 했다 한다면 학살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낳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저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가 새로운 문제로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아이히만이 유대인의 감정이나 상태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저 내용 사이의 정합성을 따져봅시다. 단순히 두 문장을 합친다면 다음과 같이 나올 겁니다.


“아이히만은 유태인의 감정이나 상태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유태인들을 미워하지는 않았다.”


이 문장에는 분명 오류가 없어 보입니다. 공감과 미움의 감정은 서로 다른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말이죠. 그럼 다른 문장도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히만은 유태인의 감정이나 상태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였고, 유태인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이 문장도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히만이 유태인에게 공감을 했다는 것은 위에서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아이히만은 유태인의 감정이나 상태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유태인들을 미워하지는 않았다.”

 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확실하게 맞습니다. 

 그렇다면 직업학교는?? 위 명제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직업학교에 대한 생각도 바뀌게 됩니다. 아이히만은 유태인들을 위해(유태인들의 공감을 바탕으로) 직업학교를 지은 것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죠. 오히려 유태인들에게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에 직업학교를 지었다고도 해석이 가능하게 됩니다. 이를 바탕으로 사고를 확장시켜보면 유태인들을 교육이 필요한 대상으로 바라보았다는 해석이 도출됩니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이히만은 유태인들을 미워하지는 않았으나, 그들에게 공감하지 못했다. 오히려 아이히만은 그들을 교육이 필요한 대상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직업학교를 지어준 것일 수도 있다.”

 이 내용을 답안에 작성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는 여러분이 판단하시면 됩니다.


(나) - 포스터 속 비둘기(공감을 중심으로 표면독해)


화자의 상황 - 포스터 속 비둘기를 보고 있음

화자의 감정 - 비둘기의 처지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음(공감)

화자의 태도 - ?


 해당 시는 표면독해의 방식으로 정리해도 충분합니다.

 화자는 포스터 속의 비둘기를 관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면서 비둘기의 감정과 상태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나는 알고 있는데/정말이지 알고 있는데’ 라는 부분에서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을 통해 알 수도 있고, 전체적으로 비둘기의 감정과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화자가 그래서 이 시에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아보기 힘듭니다. 굳이 추측하자면, 비둘기에 대한 공감을 타인에게도 권한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따름입니다. 이를 사용하시는 것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여러분의 선택이니, 저는 “?” 라는 내용으로 남겨놓겠습니다.


(다) - 아킬레우스의 뤼카온 살해(공감을 중심으로 독해 범주의 행위를 이용)

주체 - 아킬레우스

배경 - 트로이 전쟁, 아킬레우스는 뤼카온에게 공감하지 못함

양상 - 아킬레우스가 뤼카온을 설득하여 살해(인류에 대한 보편적 공감을 이용함)

결과 - 뤼카온은 삶을 포기하고 죽음


 논제에서도 말하듯, 우리는 (다)의 아킬레우스의 태도를 중점으로 봐야하기 때문에 주체를 아킬레우스로 두는 것이 적절해보입니다. 뤼카온을 들 수도 있지만, 아킬레우스의 태도를 찾기 위해선 부적절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을 한번쯤은 적용해봐도 좋습니다. 자세한 것은 2번 문제를 해설할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킬레우스가 뤼카온을 죽인 이유는 가장 피상적으로,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던 시점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찾는 게 힘들 수도 있습니다. 제시문에서 ‘싸움터’ 라는 단어나 전쟁을 암시하는 여러 단어들, ‘트로이아’라는 정황이 제시되어 있긴 합니다만, 힘들어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배경지식적인 것을 배제한 다른 이유를 찾는 것이 적절해보입니다. 제시문 (가)에서는 아이히만이 유태인들을 학살한 것의 이유로 ‘공감의 결여’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활용해본다면 제시문 (다)에서도 아킬레우스가 뤼카온에게 ‘공감하지 못해서’ 뤼카온을 살해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아킬레우스가 곧 죽게 될 뤼카온의 감정이나 상태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뤼카온을 죽이지 못했을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 방법이 조금 독특합니다. 아킬레우스는 뤼카온을 사로잡은 뒤, 바로 죽이질 않고 말을 주저리주저리 합니다. 말이 조금 의미심장하긴 합니다.


‘그대도 죽을지어다.’

‘그대보다 훨씬 훌륭한 파트로클로스도 죽었다.’

‘하지만 내 위에도 죽음과 강력한 운명이 걸려 있다.’


 와 같은 말을 들은 뤼카온은 ‘무릎과 심장이 풀어져 잡았던 창을 놓고 두 팔을 벌리며 주저앉았’습니다. 즉, 뤼카온은 위 말을 듣고 자신의 삶을 포기해버렸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아킬레우스는 뤼카온을 죽이기 전에 뤼카온을 말로 설득했는데, 그 말을 조금 분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킬레우스의 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보다 훌륭한 파트로클로스도 죽었잖아. 심지어 나도 죽어. 그러니까 너 지금 죽어.’


 좀 자극적으로 정리해봤습니다만,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으실 거라 믿습니다. 아킬레우스는 뤼카온의 죽음의 정당성에 대한 근거로 자신의 죽음과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듭니다. 즉, 아킬레우스는 모두가 다 죽는다는 인류의 보편적인 죽음의 운명을 근거로 든 것입니다. 다시 정리해보자면, 아킬레우스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죽는다는 상태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류의 보편적인 죽음에 대해 공감을 바탕으로, 뤼카온을 설득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아킬레우스는 죽음의 운명을 지닌 모든 인간에게는 공감했지만, 뤼카온에게만은 공감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뤼카온은 아킬레우스가 자신의 상황에 공감하지 못한다고 판단 후, 자신의 삶을 포기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킬레우스가 뤼카온에게 공감한 것은 분명 아닙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아킬레우스가 진정으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살고 싶어하는) 뤼카온의 상태나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뤼카온을 살려주는 것이 맞았을 겁니다. 

 







    1번 문항 풀이


먼저, 이 문항을 풀이하기 전에, 논제의 요구사항을 한번 더 살펴봅시다.


‘공감’개념을 실마리로 삼아 제시문 (가), (나), (다)를 읽을 수 있다. (가)의 아이히만 및 (나)의 시적 화자의 태도와 비교하여 (다)의 아킬레우스가 뤼카온에 대해 보이는 태도의 특징들 중 가장 두드러진 점을 지적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를 제시하시오. (1,000자 안팎으로 쓰시오. 50점)


 이 논제는 (가)의 아이히만과 (나)의 화자, (다)의 아킬레우스의 태도를 비교하되, 초점은 (다)의 태도에서 두드러지는 점을 찾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삼자비교가 아닌, (다)의 아킬레우스의 뤼카온을 향한 태도에서 두드러지는 점을 찾는 목적이 있는 비교를 하셔야 한단 겁니다.

(가)

(가)

(나)

(다)

공통점

공감

주장

공감 X

공감 O

뤼카온에게 공감 X

근거

유태인 학살/

(직업학교는 유태인을 공감한 게 아님)

비둘기의 상황에 대해

‘나는 알고 있는데’/

시 전체적으로 비둘기의 상태를 논함

아킬레우스는 뤼카온을 살해함. 인류의 보편성에 대한 공감(죽음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공감의 양상

완전한 공감 결여

완전한 공감

이중적 태도

 (가), (나), (다)의 공통점을 굳이 찾자면 셋 다 공감을 중심으로 읽어나갈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 양상은 각자 다릅니다. (가)에서 아이히만은 유태인에게 공감하지 못했고, (나)의 화자는 비둘기에게 너무나도 공감했습니다. (다)의 아킬레우스는 뤼카온에게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그에 대한 근거로, (가)의 아이히만은 유태인 학살을 지휘했습니다. 또한 그가 세운 직업학교는 유태인들의 공감을 바탕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나)의 화자의 경우 위의 표와 같습니다.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다)의 아킬레우스의 뤼카온을 대한 태도를 보면 분명 뤼카온에게 공감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뤼카온이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아킬레우스는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근거로 들어 뤼카온을 설득하고 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다)만의 두드러지는 특징이 드러납니다. (가)의 아이히만은 완전하게 유태인에게 공감하지 못했고, (나)의 화자는 비둘기에게 완전히 공감했습니다. (다)의 아킬레우스는 보편적 인류의 죽음에는 공감했을지라도, 뤼카온에게는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즉, (가)와 비교했을 때, 아킬레우스는 완전히 공감하지 않았다고 보기 힘들고, (나)와 비교했을 때, 아킬레우스는 완전히 공감했다고 보기도 힘듭니다. 아킬레우스는 공감하면서도 공감하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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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번 문항 풀이


’상상’, ‘주체’, ‘폭력’ 개념을 모두 사용하여 ‘공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시오. 제시문 (가), (다), (라)의 사례를 활용하시오. (1,000자 안팎으로 쓰시오. 50점)


 위 발문의 유형을 굳이 정하자면 ‘견해 제시’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혹은 ‘문제 해결’로 봐도 무방합니다. 이 논제를 어떤 유형으로 보든 풀이한 내용은 비슷할 것입니다. 저는 ‘견해 제시’ 유형으로 바라보겠습니다. 

  제가 설명한 견해 제시 논제 유형이라면, 특정한 사안에 대해 견해를 제시하되, 제시문 하나의 입장을 선택하고 그것을 옹호, 선택하지 않은 입장에 대한 비판을 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논제를 보면 어떤 제시문을 선택해서 ‘공감’에 대한 생각을 서술하라는 말은 없습니다.


 풀이가 둘로 나뉘는 지점입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쉬운 풀이를 해보겠습니다.


 논제는 현재, 조건을 주고 있습니다. ‘상상’, ‘주체’, ‘폭력’이라는 개념으로 ‘공감’을 이야기하라는 것과, (가), (다), (라)의 세 사례를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가), (다), (라)를 가지고 공감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니, 세 제시문을 ‘공감’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해보입니다. 헌데, 여기에서 ‘상상’, ‘주체’, ‘폭력’이라는 개념들도 고려해야 합니다. 즉, ‘상상’, ‘주체’, ‘폭력’이라는 개념으로 공감을 이야기 하는 것을 (가), (다), (라)의 사례에 접목시켜 풀어내라는 말입니다. 세 개념이 각각의 제시문에서 어떻게 공감과 작용하는지를 살펴보라는 것이죠.

 

 먼저, 처음 보는 제시문인 (라)를 살펴봅시다. 사실 어떤 제시문을 먼저 살펴보든지 상관은 없습니다만, 그저 빠른 해설을 위해 (라)를 먼저 볼 것입니다. (라)에 대한 정리독해부터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라) - 워딩턴의 용서(공감을 중심으로..)

 주체 - 워딩턴

 배경 - 어머니가 강도에게 살해당함

 양상 - 워딩턴은 강도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하며 본성을 깨닫고(복수의 대상인 강도에게 공감) 그들을 용서함

 결과 -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자세를 갖도록 돕는 중


 짧은 글이니 저것들이 어떻게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워딩턴은 강도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통해, 그들과 자신이 별 다를 바가 없다고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사고의 과정을 ‘공감’의 의미를 활용하여 들춰보면


워딩턴이 강도에게 복수하는 상상함 

-> 워딩턴이 강도들이 복수당하는 상태에 대해 공감 

-> 용서하기로 함

정도로 정리가 가능해보입니다. 여기에서 ‘상상’, ‘주체’, ‘폭력’이라는 단어를 통해 해당 상황을 살펴보아야 하니, 위의 내용을 세 개념을 사용하여 재정리해봅시다. 아주 천천히 할 겁니다. 1:1 대응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워딩턴은 강도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복수한다는 것은 ‘폭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워딩턴은 강도에게 ‘폭력’을 가하는 ‘상상’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상상 속의 폭력을 휘두르는 주체는 ‘워딩턴’이 됩니다. 이를 전부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튀어나옵니다.

    “워딩턴은 ‘폭력’의 ‘주체’가 되는 ‘상상’을 했다.”

 그 결과로 워딩턴은 그들을 용서하기로 합니다. 즉, 폭력의 주체에 섰을 때에 용서라는 공감의 형태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결과를 위 문장과 합치면

    “워딩턴은 폭력의 주체가 되는 상상을 통해 용서라는 공감에 도달했다.”

가 됩니다.


 분명 ‘용서’라는 것은 (가)의 아이히만이 저지른 학살이라는 결과와, (다)의 아킬레우스가 저지른 뤼카온 살해라는 결과보다는 좋은 결과입니다. 

 이제 문제 풀이의 윤곽이 명확해지는군요. 제시문 (라)에 나타난 상상, 주체, 폭력의 관계성으로 ‘올바른 공감’이라는 것에 도달할 수 있다는 걸 제시할 수 있으니, 문제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면 됩니다.

    “폭력의 주체가 되는 상상을 통해 바람직한 공감(용서)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선택하고 옹호해야 하는 것은 (라)의 워딩턴 이야기이고, 비판해야하는 것은 (가)와 (다)의 공감 양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 문장을 보고 (가)와 (다)가 왜 잘못된 것인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의 아이히만은 유태인들에게 어떤 상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국가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을 경우만 상상하여 두려워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아이히만은 상상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현실에서 학살이라는 극단적인 폭력의 주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의 아킬레우스는 조금 다릅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상상을 했습니다. 하지만 뤼카온을 죽여버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아킬레우스는 누군가가 전쟁에서 죽임 당한다는 폭력적 상황에 대한 상상을 하긴 했습니다만, 모두가 “죽는 것”에 생각을 했지, “죽이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즉, 워딩턴과는 달리 ‘폭력의 객체가 되는 상상’을 했기 때문에 뤼카온에게 진정한 공감을 하지 못하고, 뤼카온을 살해하는 폭력의 주체가 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위 해설을 받아들이기 쉬우셨을 겁니다.

이제부터 하게 될 해설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논술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다면적 사고’입니다.

 다면적 사고라는 것은 한 대상에 대해 이분법적으로, 혹은 정해진 방식으로 사고하는 것을 뛰어넘어 새로운 답안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논리를 오류 없이 전개해나가는 겁니다. 만일, 기존의 방식으로만 사고를 한다면 그는 다면적 사고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를 하긴 했지만 그에 대한 근거가 빈약하다면 타인으로 하여금 받아들여지기 힘들기 때문에 다면적 사고라고 말하기 힘들 것입니다. 이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이 다면적 사고의 출발점은 반대 추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 해설의 가장 최종적인 전제를 하나 건드려봅시다.

“(라)의 워딩턴이 올바른 공감이 아니라면?”, “(라)의 워딩턴의 공감이 잘못된 것이라면?”

위를 가정하고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라)의 워딩턴의 공감이 올바르지 않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사실 (라)의 워딩턴의 공감 체계에는 뭔가 문제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강도들을 용서하는 것이죠. 저 과정을 다시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워딩턴이 강도에게 복수하는 상상함 

-> 워딩턴은 강도들이 자신에게 잔인하게 복수당하는 상태에 대해 공감 

-> 용서하기로 함


 저 공감의 상태에서 뭔가 이상한 게 있지 않습니까? 워딩턴은 언제부턴가 강도에게만 공감을 하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는 잊은 것 같습니다. ‘진짜 올바른 공감’이라고 하기에는, 저 과정에서 어머니에 대한 과정이 빠졌다는 것입니다. 사건의 결정적인 피해자인 어머니는 공감의 대상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워딩턴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용서하게끔 만드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워딩턴이 어머니를 공감의 과정에 포함하지 않았듯이, 피해자를 잊은 가해자 중심의 공감 과정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즉, 결과적으로 (가), (다), (라) 세 제시문 모두 공감이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가)와 (다)는 말할 것도 없고, (라)는 워딩턴의 어머니라는 피해자에 대한 공감이 결여되고 말았습니다. 워딩턴은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못한, 어떻게 보면 뤼카온을 죽인 아킬레우스처럼 이중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더 나아가서, 아이히만이 살해당했던 객체인 유태인에게 공감하지 못했던 것처럼, 워딩턴도 마찬가지로 어머니를 비롯한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


2014 인문 논제의 2번 문제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방식으로 풀이가 가능해집니다.


 이는 문제를 출제한 연세대의 실수가 아닌, 분명한 의도입니다. 만일, 첫번째 해석만이 옳다고 한다면 연세대학교는 2번 논제의 설계를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려면 학생들에게 제시문 (라)가 올바른 공감이라고 제시를 해주고, (라)를 상상, 주체, 폭력으로 설명한 다음, 설명한 내용을 바탕으로 차라리 (가)와 (다)를 비판하라고 했을 겁니다. 혹은 평가하거나요. 그런데 연세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인문논술은 모호해요.”라고 말하는 것도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교수님들은 논제를 설계하실 때, 모호하게 설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역량을 명료하게 평가하기 위한 설계를 합니다. 그러니 제발 그런 소리는 이제 그만 해주세요.


 인문논술에 불안감을 집어넣는 건 사교육 업자들이 아니라, 논술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흘리는 학생들일 수도 있습니다.


2019년의 글----


1. https://orbi.kr/00020624013

코드킴의 인문논술 칼럼 - 1, 대입 인문 논술을 대하는 태도와 오해


2. https://orbi.kr/00020626346

코드킴의 인문논술 칼럼 - 2, 인문 논술 공부법에 대하여


3. https://orbi.kr/00020998207

코드킴의 인문논술 칼럼 - 3, 반대 추론의 결점에 대하여


4. https://orbi.kr/00021045226

코드킴의 인문논술 칼럼 - 4, 비교 논제의 풀이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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