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면 성공한다는 폭력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폭력.pdf
많은 멘토링 컨텐츠들이, 세줄 요약을 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됩니다.
노력하면 성공한다
나는 이러이러하게 노력해서 성공했다
당신들도 이러이러하게 노력하면 나처럼 성공할 수 있다
이런 말은 일견 희망적으로 들리고, 실제로 이러한 말들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어 성공바이블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이 왜 거짓인지 설명하고
이러한 슬로건에 내재돼있는 폭력성을 고발하고
그 폭력성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글을 시작하기 앞서 결론부터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성공’이 어떤 의미인지부터 명확히 해야겠죠.
인생의 성공이 뭐냐고 하는 건 무척 어려운 문제이고, 이것은 다분히 철학적인 주제일 것입니다.
하지만 “노력하면 성공한다”라는 말이 쓰이는 맥락에서는 대개,
성공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물질적 성공이나 입시에서 성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글에서는 저러한 말에서 쓰이는 성공이 입시에서 성공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제한시켜 논의를 하고자 합니다.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의 대우 명제는 “성공하지 못했다면 노력하지 않았다”입니다.
하지만 성공의 자리는 소수로 제한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노력하는 사람 수가 딱 성공의 자리 수만큼 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성공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든 사회입니다.
모두가 노력합니다, 성공의 자리수의 몇 배, 몇 십 배의 사람들이 노력을 합니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 한 사람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노력하지 않았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그렇다면 왜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이 폭력일까요?
성공의 자리가 소수로 제한되어있는 구조에 의해,
매해 입시가 끝날 때마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생산됩니다.
“노력하면 성공한다”가 참이면 “성공하지 못했다면 노력하지 않았다”가 참이므로,
매해 생산되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힙니다.
그런데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입시에서, 더 나아가 우리나라 사회에서 받는 대우는 어떠합니까?
먹고 살려면 성공해야하고, 성공하려면 노력해야하는 사회 속에서, 노력하지 않는다?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생각 없고, 대책 없고, 인생에 답이 없고, 철없고, 미래가 없는 잉여인간 취급을 받습니다.
이를 생각해봤을 때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폭력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구조상 매해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생산되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구조상 매해 ‘성공한 사람’이 생산되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말합니다. “나는 진짜 노력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발언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짜 노력’을 해서 성공한 사람이 존재하니까요.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이 참으로 여겨지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노력을 정당화해주는 건 노력 그 자체가 아닌 결과입니다.
얼마나 힘들게 노력을 했든 상관없이 성공하지 못한 이의 노력은 가짜가 됩니다.
만약 당신이 성공하지 못 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자해를 하든, 갑자기 이유 없이 눈물이 나든, 우울 속에서 자살을 고민하든,
힘들다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성공하지 않았고, 그것은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힘들다는 말은 오직 ‘노력’한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권리니까요.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부족한’ 자신의 노력을 탓하며,
자기가 힘든 것을 자기가 위로해줄 권리조차 빼앗긴 채,
죄책감과 자기혐오 속에서 괴로워하는 것뿐입니다.
이러한 폭력을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맞는 사람은 정신건강이 박살나고,
적당한 자기합리화를 하며 폭력을 빗겨 맞은 사람도, 무의식중에 ‘나는 글러먹었어. 내 인생 망했어.’하고 자신을 잉여인간 취급하는 자기평가를 항상 달고 살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봅시다.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가 성공할 수 없는 것은 구조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노력했다면 성공했어야’하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 됩니다.
즉, 문제는 구조에 있지만 책임은 ‘노력하지 않은’ 개인에게 돌아갑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이 개인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로 인한 힘들고 슬픈 감정을 위로받을 권리조차 빼앗깁니다.
사회는 이들에게 위로는커녕 의지가 박약한 잉여인간 취급을 하고,
이러한 사회분위기가 내면화된 개인들은 자기 자신을 위로해줄 방법을 잃어버린 채,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기소외를 경험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수기에서 미화된 노력이 ‘진짜 노력’의 기준이 되어,
1분 1초 어디로든 도망칠 수 없는 자기감시에 시달립니다.
이쯤 되면 이러한 의문이 드시는 분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어쩌란 거야? 이런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야?”
사실 “노력하면 성공한다”가 거짓임을 폭로하는 것은 꽤나 조심스럽고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노력하면 성공한다”가 거짓이라는 말은,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를 의미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것은 꽤나 암울하고 비관적인 얘기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사실 저도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 좋을지 망설여지고 고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노력하면 성공한다”가 거짓임을 인지하는 것은 비관주의로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 글을 읽기 전에도 여러분들은 무의식중에 이 말이 거짓임은 인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이들 이 말을 참으로 믿도록 강요하죠.
거짓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행동하려고 하면 사람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을 참으로 믿는 것은,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닌 비현실적인 낙관론을 주입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에게 비현실적인 낙관론을 강요하면, 겉은 밝아 보이지만 속은 매우 불안정해집니다.
단기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기합을 넣는 것이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입시가 끝난 시점에 이 글을 올린 것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실 속에서 안정적인 의지를 가지고 살고자 하려면 현실을 똑바로 봐야합니다.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거짓이지만, “노력하면 성공 할 수도 있다”는 참입니다.
이 둘은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큰 차이가 있습니다.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앞서 살펴봤듯이, 성공하지 못 했을 경우 그 책임을 개인의 노력에게 돌리게 하는 말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모두가 성공할 수 없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 책임이 온전히 개인에게 돌아갈 수 없습니다.
또한 인생에는 사람이 노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합니다.
그 중 하나가 노력에 대한 결과입니다.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도록 강요하고, 그러지 못했을 때 책임을 묻는 것은 폭력입니다.
노력해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닙니다.
뭐, 더 다른 방식으로, 또는 조금 더 노력해서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러지 못한 것이 내가 죄의식을 느껴야할 나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탓이 아닌 것을 내 탓으로 돌리고 내가 내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
나는 의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할 힘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할 점은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내 책임이 아니라는 말이,
성공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이 거짓임을 폭로하는 것은, 노력해봤자 소용없다는 비관주의로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더 좋은 결과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좋은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거짓이지만, “노력하면 성공할 수도 있다”는 참이니까요.
그렇기에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지 공유하는 활동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구체적인 노력에 대한 방법을 알려주는 멘토링 컨텐츠들이 절대로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올 한해 제가 고민해왔던 공부방법론에 대한 글을 올릴 계획이고요.
제가 이 글을 통해서 폼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냉소적으로 이야기하면 사실 상황이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실패의 책임이 개인에게 돌아가는 것은 폭력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회구조상 결과에 연연하며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 결과를 좋게 하기 위해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개인이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이 글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못했지만, 사실 노력하기 유리한 환경에 처한 사람과 불리한 환경에 처한 사람이 존재하고, 그렇기에 지금의 상황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솔직히 슬프고 분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지금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최선입니다.
사실 이런 장황한 이야기보다 “결과 ㅈ도 신경쓰지 마시고 여러분 꼴리는대로 사세요~”하면서 한분 한분에게 10억씩 쥐어드리는게 더 실질적인 도움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께 10억씩 쥐어드리는 것을 할 수 없으니 위의 말은 자기만족에 불과한 무책임한 말이 될 것입니다.
잠시 딴 얘기를 해보죠.
21세기입니다.
지구의 모든 사람을 배불리 먹일 수 있을 정도로는 인류의 생산력이 발전을 했습니다.
그렇기에 먹고 살기 위해 목숨 걸고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원리적으로는 가능합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성공으로 정의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원리적으로는 가능합니다.
원리적으로 가능하다면 꿈으로 새기고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저는 그러한 사회를 꿈으로 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런 꿈을 가지고 있어봤자, 또 이런 꿈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해봤자 지금 당장 사회가 변화하는데 영향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위선적으로 보이거나 자기만족적으로 보일까 무섭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는 이런 이야기 없이 글을 끝낸다면,
결국 모순된 세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노오오오력을 하라는 식의,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는 이야기로 느껴질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모두가 긍정적으로 의지를 가지고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 것이지,
모순된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폭력적인 강요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긍정적으로 의지를 가지고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모순된 현실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모순을 인지하되 그러한 현실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제가 앞서 ‘더 좋은 상황을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이 좋은 결과를 위해 개인이 노력하는 것’이라고 한 것은, 입시를 눈앞에 둔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최선이 그것이 맞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좀 더 장기적으로는 개인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우리의 상황을 좋게 만들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우리가 더 행복한 상황에서 살 수 있게 하는 개인들의 노력이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그렇기에 문제의 본질을 어물쩍 덮고 넘어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둘째로는 당장의 변화가 없더라도 이러한 꿈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앞가림하기에 벅찬 세상입니다.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 꿈이네 뭐네 거창하게 얘기하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고,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면서 무슨...’하는 냉소에 빠지게 되는 일이 정말 많았습니다.
사실 이런 내용의 글을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망설이다가 이제야 올리게 된 것은 이러한 냉소 때문이었고요.
이러한 냉소로부터 꿈을 지키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꿈을 공유하고 나와 비슷한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러한 용기를 가질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사회구조가 이러한 형태를 띠게 된 배경은 꽤나 복잡하고, 솔직히 말하면 저는 제가 죽기 전까지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할지에 대해서 회의적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꿈을 잃지 않고 각자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살아나가면, 좀 더 좋은 세상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멘토링에 처음 발을 들였던 것은 2010년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에 숨겨진 폭력성에 상처받아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항상 봐왔습니다.
매번 망설였지만 이제는 정말 이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과 고발이 필요하다고 생각돼서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다들 노력하고 있습니다.
“먹고 살려면 성공해야 한다. 성공하지 못 했다면 너의 노력이 부족한 것이다.”
이 말은 단순히 우리나라 입시에서만 유행하는 슬로건이 아니라 이 시대에 전 세계에 떨어진 지상명령입니다.
점점 이 말로부터 자유로운 곳을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노력하지 않으면서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웬만해서는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 하나만 하려고 하면 스토리있고 일관성있고 진실되고 눈물나는 열정을 가졌음을 증명해야 하고, 그러지 못하면 죄의식이나 자기혐오감을 갖도록 강요받는 사회 속에서, 맨 정신을 유지하고 살아 숨 쉬는 것 자체가 노력입니다.
“글쎄요, 저를 잘 몰라서 그러시는 것 같은데, 저는 정말 대책 없이 놀아요.”
라는 생각이 드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저도 이러한 분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기에 비슷한 생각을 종종합니다.
왜 죽도록 힘들게 고생하는 노력만이, 또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포기하며 온 시간을 쏟는 노력만이, ‘노력한다’는 말의 기준이 되어 우리는 여가나 휴식에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 겁니까?
당신은 노력했습니다.
틈틈이 게임이나 SNS를 하며 딴 짓을 하고, 가끔은 생각 없이 며칠 동안 놀거나 아무것도 안 했을 수도 있죠.
하지만 당신은 노력을 했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당신 본인이 알아줘야 합니다.
이 말이 꼭 지금에 만족하고 더 노력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 노력할 수도 있고, 더 노력해야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고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당신의 노력을 폄하하는 폭력들로부터 맞서 싸워야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의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글이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폭력으로 인해 상처받은 분들에게 위로가 되는데 도움이 되기를,
그리고 이러한 폭력에 맞서서 자신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Ps.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읽고 공감되시는 부분이 있으셨다면 좋아요나 댓글을 달아주시면 제게 큰 힘이 됩니다.
또 의문가시는 부분이 있으셨다면 댓글이나 쪽지로 질문해주셔요
그리고 작년 글 읽어주시고 좋아요 눌러주시고 팔로우 해주신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피카츄 프사여서 따봉 눌러드립니다
글은 하나도 안 읽었습니다
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조금씩 읽어봤는데 이 일이 생각나는군요
이하는 나무위키에서 퍼왔습니다. 5급공채 1차시험인 psat에 관하여.
일부 수험생들이 구 중앙인사위원회(현 인사혁신처)에 노력과 보상이 일치되지 않는 불공정한 시험이라며 항의했지만, 정부 측에서는 PSAT를 비롯한 공무원 공채시험은 노력에 대해 보상해주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고 쿨하게 대응했다(…).
프사땜에 따봉만 주시고 글은 안 읽고 가실줄 알았는데 ㅋㅋㅋㅋ 감사합니다
댓글내용으로 구글검색해서 나온 글 읽어보고 있는데 흥미롭네요
구조의 모순을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돌리는 폭력적인 사고방식은 없어져야함
댓글 감사합니다.
맞아요 이제 이 말이 꽤 보편화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타 입시사이트 갔다가 아닌걸 보고 놀랐어요
자신을 긍정하라는 말.. 정말 감사합니다ㅎㅎ
너무 거창한 얘기를 넣는건가 고민하면서 넣었는데 좋게 봐주신 분이 있으니 다행이네요 ㅎㅎ
댓글 감사합니다
말씀처럼 실패하니까 지금까지 한 노력이 부정되었어요
주변이 그래도 제자신을 제가 위로해줬어야됬는데
지금까지 그런 폭력에 저를 놔둔채 아 진짜그런걸까 이렇게말하는자체가 핑계인가생각하면서 자기의심을하며 괴로워하고 제 노력을 부정하는사람들의 말을들을때면 굉장히힘들었어요
이글써주셔서 감사해요 지금까지힘들었는데 생각을 바꿀수있는 글이였어요
노력하면 성공한다 의 대우는 성공하지않은사람은 노력하지않았다 이말은 정말 틀리고 이렇게생각하는건 정말 오만한것같아요 저도 늘새기고 저를위로해줘야겠어요
이글써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셨는데 저는 이댓글써주셔서 감사해요
사실 글을 쓸때면 글이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이런 글 올려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참 많이하는데
이런 분이 한분이라도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이 글을 올린 것이 의미있는 일이었던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서울대 나오면 성공만 해오신분인것같아서 이런생각 못해보셨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일반화한 제가 오만했던것같아요
오랜시간이지났는데도 이게 해소가안되서 괴로워했어요
글도잘못써서 댓글에 마음이 표현이 안되어서 감사하단말밖에못하네요ㅜ
다른글도 계속보고싶은데ㅜ 글 올리시는 다른 사이트가있나요?
학부에 입학하기 전에 서울대는 엘리트주의에 찌든 똥멍청이들만 우글우글할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생각나네요 ㅋㅋ
아니에요 감사해요 ㅎㅎ 사실 써주신 댓글 읽고 울컥했습니다
일단은 제 아이디로 검색해보면 예전에 오르비에 올려놨던 글도 꽤 있긴 합니다
6,7년전에 공신닷컴이라는 사이트에 연재했던 글을 다듬어서 올해 오르비에도 올려보려고 계획을 하고는 있는데, 오르비에 이미 올려놓은걸 제하고 올리면 이런 취지의 글보다 공부방법론 글이 더 많을 것 같네요
오르비에 올려놓은 글 외에도 관심이 있으시면 쪽지나 댓글로 메일주소 알려주시면 아직 다듬기 전의 글들을 보내드릴 수는 있습니다 :)
네 감사합니다 천천히 느끼면서 정독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제 상황이랑 비슷해서 많은 위로가 되었네요
입시실패하니까 전 그냥 노력도안한 등신으로 찍혀서
아무도 제말을 들어주지않았고 해왔던 노력마저 부정당했습니다.
어찌해서 한번더 기회를 얻었으니
저 자신을 지키면서
이제 결과로
증명해야겠네요ㅋㅋㅜㅜ
댓글 감사합니다
노력이 결과로 증명되어야하지 않는 사회를 바라는 마음으로 올린 글이긴 하지만 ㅎㅎ
좋은 결과 얻으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기성세대 분들은 여전히 개인의 탓으로 돌리죠... 그 결과 사람들 살기 엄청 힘들어졌고, 이것땜에 혐오문화가 요즘 팽배하나봅니다.
네 ㅠㅠ 다음 기성세대가 될 사람들에게는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 생각이 보편화되면 좋을 것 같아요
기성세대의 인식변화가 구조의 변화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모를일이지만, 그래도 변화의 가능성이라도 생기고 구조가 그대로더라도 좀 덜 폭력적인 분위기의 사회가 될 수 있을테니
변화가 없을 경우 젊은사람들은 '혐오문화'와 '낮은 출산율'로 답해줄 것입니다.
고1 담임스앵님 생각나네요 개씨발년. 그래도 위로받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고1 담임스앵님이 노오오오오력을 강조하시던 분인가봐요
댓글 감사합니다
뜬금없지만 갠적으로 이게 좌파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함. 좌절하는 이들을 뒷받쳐주고 도와주는것. 훌륭한 일 하시네요
헛 이거 저를 칭찬해주시는 말씀이신가요 ㄷㄷ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ㅇㄱㄹㅇ 제 노력이 부족한건 맞았지만 불이난 제 기분에 부채질하던 제 선생님 수업 시간마다 수시 찬양하고 겨울방학때 하라는 영어는 안가르치고 페미니즘 수업한거 꽤나 역겨웠네요
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위로가많이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