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고 조경민 [875628] · MS 2019 · 쪽지

2021-12-04 14:53:15
조회수 17,016

메모1) 시는 해석하려고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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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우선 느껴라.


느낌은 대체로 모호하고 달콤하고 어딘가 아쉽고, 또 꺼림직하다.


프랑스의 학자 Gaston Bachelard의 말이고, 한국 문학계에는 김현 교수님을 통해 많이 전파되었습니다.




수능 문학을 풀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1. 일단 전반적인 '느낌'을 얻고,


2. 주요 시어들의 관계를 파악한 뒤,


3. 선지를 읽으면서 정오를 판단하면 됩니다.




수능에 나오는 현대시들은, 쉽게 쓰여서 해석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정확한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일단 분위기를 느낍시다. 


화자가 어떤 대상 혹은 상황을 긍정적으로 판단하는지/부정적으로 판단하는지 먼저 봅시다.


기출 지문들을 조금 볼까요?




한 줄의 시()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꿋꿋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 남아 

귀중한 사료(史料)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詩人)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김광규, 「묘비명(墓碑銘)-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인이 '묘비'에 대해 반어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은근히 비판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야 문제에 대한 접근이 가능합니다.






한강물 얼고, 눈이 내린 날

강물에 붙들린 배들을 구경하러 나갔다.

훈련받나봐, 아니야 발등까지 딱딱하게 얼었대.

우리는 강물 위에 서서 일렬로 늘어선 배들을

비웃느라 시시덕거렸다.


한강물 흐르지 못해 눈이 덮은 날

강물 위로 빙그르르, 빙그르르.

웃음을 참지 못해 나뒹굴며, 우리는

보았다. 얼어붙은 하늘 사이로 붙박힌 말들을.


언 강물과 언 하늘이 맞붙은 사이

저어가지 못하는 들이 나란히

날아가지 못하는 들이 나란히

숨죽이고 있는 것을 비웃으며, 우리

빙그르르. 올 겨울 몹시 춥고 얼음이 꽝꽝꽝 얼고.

-김혜순, 「한강물 얼고, 눈이 내린 날」- (2021학년도 9월 모의평가)


그런데 위의 시 같은 경우에는 해석이 어려울 뿐 아니라 느낌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작품이 나오는 경우, 평가원은 개념들 간의 관계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요소를 출제합니다.




(적절하지 않은 선지) ② 아니야는 배가 훈련을 받고 있다는 추측을 부정하는 표현으로, 배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배의 내부적 원인에서 기인하고 있음이 이를 통해 드러난다.




배가 움직일 수 없는 것은 강이 얼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배의 내부적 원인(배가 고장났다거나, 배에 구멍이 뚫렸다거나)이 아니라, 외부적 원인으로 인해 움직일 수 없는 것이죠.


시를 이해를 못해도 상황에 대한 객관적 이해(강이 얼었음->강이 흐르지 못함->배가 저어가지 못함)가 있으면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느낌이 안 오면, 개념들 간의 관계를 파악하면 됩니다.




초라한 경력을 육지에 막은 다음

주름 잡히는 연륜마저 끊어버리고

나도 또한 불꽃처럼 열렬히 살리라

-김기림, 「연륜」- (2022학년도 6월 모의평가)



(적절하지 않은 선지) ② ()에서 불꽃을 긍정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것은, ‘주름 잡히는 연륜에 결핍되어 있는 속성을 끊을 수 있는 수단이라는 의미로 재해석한 것이겠군.


시에서는 '연륜을 끊고' -> '불꽃처럼 열렬히 삶'을 얘기합니다.


'연륜을 끊음'이라는 행위가 '불꽃처럼 열렬히 삶'의 수단인 것이죠.


따라서, 수단과 목적, 선후관계가 뒤바뀌었으므로 2번 선지는 옳지 않습니다.


굉장히 객관적이죠??






보통, 수능에서는 현대시가 쉬울수록 내용 이해를 더 물어보고


현대시가 어려울수록 이해보다는 '객관적인 사실 판단'을 더 요구합니다.


쉬운 경우에는 '느낌'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어려운 경우에는 '관계 파악'의 중요성이 더 커지는 것이죠.






요즘 각잡고 제대로 된 칼럼 쓸 시간이 안 되어서, 이렇게 짧게 짧게 메모처럼 자주 올려볼까 합니다.


저는 


만점의 생각 비문학편 저자


피램 문학 시리즈 공동 저자


조경민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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