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m PPL 칼럼 77호] 아이디어의 발상은 재능의 영역인가?
안녕하세요! PPL 수학연구소의 팀원 이경민입니다.
수능 졸업한지 1년밖에 안 된 입장이라, 오늘은 제가 수능 수학을 준비하면서 가졌던 가장 큰 의문을 위주로 글을 다뤄볼까 합니다. 여러분 한 번쯤 그런 생각 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수능은 재능의 영역인가?”
어떻게 보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이긴 합니다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능이 아예 관여하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못합니다. 사람마다 ‘수학적 직관’이 빠르게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재능이 없는 사람은 그냥 이 악물고 버텨야 하는 건가요? 당연히 아닙니다. 수능 준비를 하면서 수학 성적이 오르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하며, 그 중에는 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도 6월 모의평가 때는 2등급이라는 점수를 받아들었지만, 9월과 수능에서는 모두 백분위 100을 받았기에 이 재능의 영역은 분명하게 극복해낼 수 있는 것이라 장담할 수 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래서 그걸 어떻게 극복하는지가 문제입니다. 흔히 가장 ‘아이디어’와 ‘발상’의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도형 문제를 하나 들고 왔습니다.
2023학년도 9월 모의평가 13번 문항입니다. 당시에 상당히 낮은 정답률을 기록한 문제로 회자되고 있죠. 이 문제를 풀었다는 전제하에 저의 사고 과정을 그대로 나열해보겠습니다. 상당히 길어 보이겠지만 모든 사고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① AC와 CD의 길이의 곱을 구해야 하는데, 우선 각각의 값을 구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② CE와 ED의 길이도 알고 각 CED의 크기도 아니까 CD의 길이는 코사인 법칙으로 쉽게 구할 수 있겠네.
③ 이제 AC의 길이를 따로 구해야 하는데 어떻게 구해야 하지?
④ 일단 조건을 다 썼는지 확인해보자. 어? AB가 지름이라는 사실과 점 O가 중심이라는 점을 안 사용했네. 이거 사용해야지.
⑤ AB가 지름이면 각 ACB가 90도라는 것 말고는 쓸 게 마땅치 않은데... 그렇다고 해서 이등분선이나 각이 같은 게 따로 보이지도 않아서 이 조건은 일단 보류해야겠군.
⑥ 다음으로 O가 중심이라는 점을 사용해야지. 어쨌든 식으로 풀어야 하니 AO, BO, CO의 길이가 반지름으로 모두 같다는 사실을 사용해주면 O가 중심이라는 점을 수식적으로 표현해줄 수 있겠군. 그럼 AO의 길이를 r이라고 하자. 이때, OE의 길이는 r-4이고 더 이상 길이 표시할 곳은 없군.
⑦ 혹시 r의 값을 구할 수는 없나? 여러 군데에 사인법칙이랑 코사인법칙을 적용시켜 봐도 마땅히 r의 값에 대한 방정식이 나오는 곳은 없군. 할 수 없지. 보조선을 그려봐야겠어.
⑧ 두 점을 잇는 보조선이 가장 무난하지. 보조선은 연결했을 때 그 선에 대한 정보가 주어져야 하니까 적당한 곳은 선분 OD가 되겠군. 그럼 그곳의 길이도 r이고 나머지 변의 길이가 나와있으니 삼각형 ODE에서 코사인 법칙을 쓰면 되겠네.
⑨ r 값도 알았고 그럼 무적이네. 삼각형 AEO에서 코사인 법칙을 써서 AE도 구할 수 있고, 다시 삼각형 ACE에서 코사인 법칙을 써서 AC도 구할 수 있겠다.
기출문제를 충분히 학습하셨다면 이 문제에서 별도의 발상이나 아이디어가 활용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보조선을 긋는 것은 발상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에 대해서도 곧 설명드리겠습니다. 자, 위의 생각의 흐름 중에서 (4), (6), (7), (8)의 과정에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4)에서 저는 조건을 전부 다 썼는지 확인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루틴’ 때문입니다. 수능 고난도 문항은 문제에 주어진 조건을 전부 사용해야 문제가 풀리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저는 일단 주어진 조건을 이용해서 구할 수 있는 길이나 각도는 전부 구하려고 했습니다. 전부 다 했는데 이제 더 이상 할 게 없었기에 아직 안 쓴 조건이 없는지 확인한 것이고, 그랬기에 조건을 전부 썼는지 확인한 것입니다.
→ Class 1 : 문제의 조건을 전부 사용했는지 확인하자. 답이 나왔는데 이상한거라면 조건을 이상하게 활용했거나 단순 실수일 가능성이 높지만, 답 자체가 안 나오는거라면 문제의 조건을 아직 모두 활용하지 못했거나 덜 활용한 것이다.
(6)에서 주목할 점은 ‘O가 중심이라는 점을 수식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도형에서 숫자 싸움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O가 중심이라는 것을 알아도 이것을 식으로 표현해주지 못한다면 그 조건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방법이 되었든 이 점이 중심이라는 점을 ‘어필’해주어야 합니다. 대신 식을 사용해서 말이죠:) 꼭 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각의 이등분선 정리라면 변의 길이비가 정해지는 것처럼 여러분이 항상 하는 것들이 있을 겁니다. 그것 역시 상황을 수식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시도이죠. 이에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갑자기 길이를 r로 표시해서 이것이 ‘아이디어’가 아닌가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이것을 해 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 Class 2 : 상황을 수식적으로 해석하려고 연습해보자. 물론 기초적인 기하적 판단이 이루어져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수식을 이용해서 문제를 푼다. 특히 도형 문제에서 주어진 조건을 수식으로 표현하는 연습은 매우 중요하다.
다음으로 (7)입니다. 이것은 (4)와 같이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보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 군데를 전부 찔러보는 거죠. 물론 이걸 언제 다 해보고 있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겠습니다만, 코사인 법칙이 두 변과 한 각의 크기를 알고 있을 때 나머지 한 변의 길이를 구하는 것이고, 사인 법칙이 여러 각의 삼각함숫값이 주어져 있을 때 사용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적어도 이들을 이용해서 원하는 값에 대한 방정식을 만들 수 있을 지에 대한 판단은 쉽게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때로는 이렇게 찔러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문제를 보자마자 정풀이로 간다는 보장은 절대 못하니까요! 이 역시 해보면서 바른 풀이를 찾아나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 Class 3 : 구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찔러보자. 할 만한 거 다 해봤는데도 안 되면 그 때 손 떼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손 떼버린 것이 있다면 풀이를 보면서 해당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인지했어야 하는지, 왜 그런 생각을 했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마지막으로 (8)입니다. 보조선에 관한 내용입니다. 가장 ‘발상적’이라고 질타받는 부분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 역시 수능 출제원리를 생각하면 그렇게 어려운 내용이 아닙니다. 뜬금없다고 생각들 수 있겠지만 수능은 ‘교육과정을 얼마나 충실하게 이수했는가’로 학생을 변별하는 시험이지 ‘새로운 발상을 할 수 있는지’로 변별하는 시험이 아닙니다. 보조선을 사용하더라도 일반적인 학생이 충분히 떠올릴 수 있는 곳에서 출제한다는 것이죠. 이 ‘충분히 떠올릴 수 있는 곳’이라 함은 흔히 말하는 ‘수선’, ‘평행선’, ‘두 점 잇기’ 등이 있겠습니다. 이 방법들이 가장 무난한 보조선의 예시입니다. 수선이나 평행선 등을 여러 군데에 그어볼 수는 있겠습니다만 아마 쉽게 답이 나오진 않을 겁니다. 해보다 안 되면 손 떼고 다른 보조선을 그어봐야죠. 그래서 두 점 사이를 이었습니다.
→ Class 4 : 보조선은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 일단 할 때까지 해보고 더 이상 할 게 없으면 긋는다. 만약 긋게 된다면 보조선은 단순한 곳부터 그어보자. 수능에서는 과도한 발상을 절대 요구하지 않는다. ‘두 점 잇기’, ‘수선’, ‘평행선’ 등 단순한 곳부터 출발해보자.
위의 과정들이 과연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문제를 풀 때 갖춰야 할 기본적인 자세만 있다면 이 문제에서 아이디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활용되지 않았습니다. 그 ‘기본적인 자세’가 바로 일종의 ‘루틴’입니다. 상위권 학생들이 고득점을 할 수 있는 이유이죠. 위의 내용은 예시이기 때문에 모든 루틴을 소개드릴 수는 없었습니다만 이 ‘루틴’은 학생이 직접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루틴이 올바른지 확인하고 수정하기 위해 인강이나 학원의 도움을 받는 것이고요. 처음에는 다소 불안정한 루틴으로부터 시작하지만 점점 다져나가지면서 확실한 ‘수능을 위한’ 루틴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제 결론은 그것입니다. 스스로 바른 루틴이 잡혀 있다면 수능 수학은 충분히 정복 가능하다. 그리고 그 루틴은 스스로가 어떻게 공부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사실 ‘수학적 직관’이 있는 학생들은 지금 말한 일련의 과정들이 자연스럽고 빠르게 진행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없는 학생이라면 이와 같은 과정들을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빠르게 이어질 수 있도록 연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기출을 풀고, N제를 풀고, 사설 모의고사를 푸는 것이죠. 하나 기억해두면 좋겠습니다. 수능은 절대 여러분의 ‘재능’을 평가하는 시험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안 해도 점수가 나온다는 말은 더더욱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기출문제의 유형들을 전부 학습했고 각 유형에 적용되는 개념들을 모두 학습했다면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마무리지으며 이 칼럼에서 소개드린 내용을 통해 문제를 의식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배워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여러분의 미래를 응원합니다~~!!!
칼럼 제작 |Team PPL 수학연구소팀
제작 일자 |2023.04.02
Team PPL Insatagram |@ppl_prem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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