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 [367231] · MS 2011 · 쪽지

2016-01-22 01: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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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史] 한국사 기초훈련 4 -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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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역성혁명 : 왕이 부덕하여 인심을 잃으면, 덕이 있는 다른 사람이 천명을 받아 왕조를 바꾸고 새로운 왕조를 세워도 좋다고 하는 사상

 

불씨잡변 : 불교의 교리인 윤회설, 인과설, 지옥설 등을 성리학의 입장에서 철저히 비판한 정도전의 저서.

 

오례 : 국가적인 5가지 의식, 즉 가례(家禮), 길례(吉禮), 흉례(凶禮), 군례(軍禮), 빈례(賓禮)를 말한다.

 

주자가례 : 관혼상제(冠婚喪祭)4례에 관한 주자의 학설을 수집하여 만든 책

 

6조 직계제 : 6조에서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사안을 국왕에게 올려 재가를 받아 시행하는 제도로, 의정부의 재상권이 약화되고 왕권이 강화되었다.

 

의정부 서사제 : 6조에서 올라오는 모든 일을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중심이 되는 의정부에서 논의한 다음, 합의된 사항을 국왕에게 올려 결재를 받는 형식이다.

 

3: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을 일컫는 말. 이들은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고, 정사를 비판하며 문필 활동을 하면서 언론 활동을 담당하였다. 3사의 언론은 고관은 물론 왕이라도 함부로 막을 수 없었고, 이를 위한 여러 규정이 관행으로 받아들여졌다.

 

진관 체제 : 지역 단위의 방어 체제. 병영 아래에 몇 개의 거진을 설치하여 거진의 수령이 그 지역의 군대를 통솔함

 

문과 : 문과 예비 시험은 소과(생원시, 진사시)와 대과(문과)로 이루어졌다. 소과 합격자는 성균관에 입학하거나 하급 관리가 되기도 하였다.

 

문과 응시 자격 제한 : 탐관 오리의 아들, 재가한 여자의 자손, 서얼은 응시를 제한하였다.

 

상피제 : 가까운 친인척과 같은 관서에 근무하지 않도록 하거나 출신 지역의 지방관으로 임명하지 않는 제도

 

영남, 기호 : 영남은 경상도, 기호는 경기와 호서(충청도)를 합칭하는 말이다.

 

조광조의 개혁 정치 : 현량과, 경연 강화, 언론 활동 활성화, 위훈 삭제, 소격서 폐지, 소학 보급, 방납 폐단 시정

 

사화와 붕당 정치 : 사화에서는 대체로 훈구와 사림이 대립하였으며, 붕당 정치는 사림 간의 대립이었다.

 

사대 교린 정책 :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국제 질서 속에서 나타난 외교 정책으로, 서로의 독립성이 인정된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예속 관계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토관 : 수령을 파견하지 않고 토착민을 행정 책임자인 토관으로 임명하여 민심을 수습하려 하였다.

 

3: 부산포, 제포(진해), 염포(울산)이다.

 

의병 : 자발적인 무장 부대로, 농민이 주축을 이루었으며, 전직 관리와 양반, 승려가 조직하고 지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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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양전 사업 : 토지의 실제 경작 상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전국의 결수를 정확히 파악하고, 양안(토지 대장)에 누락된 토지를 적발하여 탈세를 방지하며, 토지 경작 상황을 조사하여 국가 재정의 기본을 이루기 위해 시행하였다.

 

수신전 : 조선 전기에 과전을 지급받은 관리가 죽은 뒤에 재혼하지 않은 부인에게 지급한 수조지이다. 과전을 받던 관리가 죽은 뒤 자식이 있는 경우는 남편 과전의 전액을, 자식이 없는 경우 반액만 지급하였다.

 

휼양전 : 조선 시대에 과전을 봉록으로 받던 관리 부부가 다 죽고 그 자식이 어릴 경우 이를 휼양하기 위하여 아버지의 과전을 물려 받은 토지이다.

 

조운(漕運) : 군현에서 거둔 조세는 배를 이용하여 강가나 바닷가의 조창으로 운반하였다가 전라도, 충청도, 황해도는 바닷길로, 강원도는 한강, 경상도는 낙동강과 남한강을 통하여 경창으로 운송하였다.

 

육의전 : 조선 시대 독점적 상업권을 부여받고 국가 수요품을 조달한 여섯 종류의 큰 상점이다.

 

방군수포 : 16세기 이후 군역에 복무하는 대신 포를 납부하여 군역을 면제받았던 행위로, 이후 대부분의 양인들은 군포 납부의 부담만을 지게 되었다.

 

환곡 : 흉년이나 춘궁기에 곡식을 빈민에게 대여하고 추수기에 이를 환수하던 진휼 제도로서 환상또는 환자라고 한다.

  

사회

서얼 : 서얼이란 첩의 자식은 서자와 얼자를 말한다. 이때 본처의 자식은 적자가 된다. 첩의 신분이 양인이면 서자가 되고, 천민이면 얼자가 된다. 서얼은 양반의 자손일지라도 가족과 사회에서 차별 대우를 받았으며, 문과 응시가 금지되고 양반 계층에 속하지 못하여 중인 대우를 받았다.

 

신량역천 : 양민이면서 하는 일이 천하여 천대 받았던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들을 칠반천역이라고도 한다. 역졸(역에 근무), 일수(지방 고을 잡역), 봉수군(봉수 업무), 조졸(조언 업무), 조례(관청의 잡역 담당), 나장(형사 업무 담당), 수군 등 힘든 일에 종사하는 일곱 가지 부류가 여기에 해당한다.

 

환곡제 : 춘궁기에 양식과 종자를 빌려 준 뒤에 추수기에 회수하는 제도이다. 본래 의창에서 담당하였지만, 의창은 빌려 준 원곡만을 받았기 때문에 곧 원곡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상평창에서는 모곡이라 하여 원곡의 소모분을 감안한 이자 10%의 이자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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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향음주례 : 향촌에 있는 선비, 유생들이 노인을 봉양하고 학덕 높은 이를 존경하는 뜻으로 연회를 베풀며 행하는 의례를 말한다.

 

실록편찬 : 한 국왕이 죽으면 다음 국왕 때 춘추관을 중심으로 실록청을 설치하고 사관들이 국왕 앞에서 기록한 사초, 각 관청의 문서를 모아 만든 시정기 등을 종합 정리하여 실록을 편년체로 편찬하였다.

 

성학십도성학집요’ : ‘성학십도에서는 군주 스스로가 성학에 따를 것을 제시한 반면, ‘성학집요에서는 현명한 신하가 성학을 군주에게 가르쳐 그 기질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칠정산 : 칠정산 내편은 원나라 수시력을 참고로 서울을 기준으로 천체 운동을 계산한 것이고, 외편은 아라비아의 회회력을 참고로 만든 것이다.

 

서원 건축 : 16세기에 사림이 성장하면서 서원을 많이 건립하였다. 서원은 산과 강이 가까운, 자연의 이치를 탐구할 수 있는 마을 부근의 한적한 곳에 위치하였는데, 교육 공간인 강당을 중심으로 사당과 기숙 시설인 동재, 서재를 갖추었다. 서원 건축은 사원의 가림 배치 양식과 주택 양식이 실용적으로 결합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사료 읽기 > 그냥 편하게 쓱 읽어두세요. 기억에 남아서 큰 도움 됩니다!!

(1) 사헌부는 시정을 논평하고, 모든 관원을 감찰하며, 풍속을 바로잡고 억울한 일을 밝히며, 외람된 행위와 허위의 언동을 금지하는 등의 일을 한다. <경국대전>

 

(2) 사간원은 임금에게 간언하고, 정사의 잘못을 논박하는 직무를 관장한다. 모두 문관으로 임명한다. <경국대전>

 

(3) 홍문관은 경적을 관리하고 문서를 처리하며, 왕의 자문에 대비하는 임무를 관장한다. <경국대전>

 

(4) 간관은 재상과 대등하다. 천하의 득실과 생민의 이해와 사직의 대계에 있어서 오직 듣고 보는 대로 간섭하고 일정한 직책에 매이지 않는 것은 홀로 재상만이 할 수 있으며, 간관만이 말할 수 있으니 간관의 지위는 낮지만 직무는 재상과 대등하다. 간관은 임금의 좌우에 있어야 한다. 간관과 어사는 비록 다 같은 언관이지만 직책은 다르다. 어사는 규찰하는 것을 맡아 백관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군에게 잘못이 있으면 간관이 글월을 올려 아뢰고 신하가 법을 어기면 어사가 상소하여 탄핵한다. <경제문감>


<광해군의 중립외교>

경들은 이 오랑캐들을 어찌할 것인가? 우리나라 병력으로 막을만한 형세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지난번 명나라에서 구원병을 두 번이나 요청해왔을 때 응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경들은 어찌 내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우리 군사가 투항한 사실을 명나라에 알리려고만 하는가. 내 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이를 절통해 하는 도다.

 

<광해군에 대한 부정적 평가>

명이 임진왜란 때 나라를 다시 세워준 은혜는 만세토록 잊을 수 없다. 선왕이 즉위하여 40년 동안 지성으로 사대(事大)하여 평생 등을 서쪽으로 대고 앉은 적이 없었다. 광해군은 배은망덕하여 천명의 두려움을 모르고, 음흉하게 두 마음을 품어 오랑캐에게 정성을 바쳐 기미년 오랑캐를 칠 싸움에 이르러 장수에게 정세를 보아 향배를 정하라고 일렀다. 우리 삼한 예의의 나라로 하여금 오랑캐와 짐승의 지경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니 통탄해 본들 어찌 말을 다하겠는가?

<광해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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