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RETS OF MIND GAMER
JOSHUA FOER | NYT MAGAZINE | 02.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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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 훈련 첫밗에는 이 복잡한 기법들을 배워야 한다는 게 어이없도록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서 우선 과학 논문들을 뒤졌는데, 그러다 보니까 거듭 되풀이해서 나오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플로리다 주립대학 심리학과 교수이자 “뛰어난 기억력은 만들어지는 것이지 타고나는 게 아니다”(Exceptional Memorizers: Made, Not Born)의 저자인 앤더슨 에릭슨이었다.
에릭슨은 이른바 “기억력 제고 이론”(Skilled Memory Theory)의 터를 닦은 사람인데, 이 이론은 일정한 한도 내에서 기억력을 증진할 수 있는 방법과 그 이유를 톺는다. 1978년 에릭슨과 그의 동료인 빌 체이스는 나중에 고전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실험 하나를 한다. 실험대상자는 S.F.라고만 알려진, 당시 카네기멜론 대학 재학생이었다. S.F.는 두 학자의 실험실에서 매주 몇 시간 동안 간단한 기억력 테스트를 받았는데, 의자에 앉아서 귓전에 들려오는 숫자를 되도록 많이 머릿속에서 기억하는 테스트였다. 실험 첫밗에는 일곱 자리 숫자밖에 기억하지 못했던 사람이 이태 후 실험 막바지에는 70자리 숫자까지 외울 수 있게 되었다.
에릭슨 교수한테 전화를 걸어서 기억력 훈련을 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고맙게도 나를 실험 대상자로 삼아주겠다고 해서 서로 거래를 했다. 나는 내 훈련 과정 데이터를 모두 그에게 넘기고 그 대가로서 그와 그 밑에서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은 내 데이터를 분석하여 내 기억력을 증진할 수 있을 만한 법을 밝히는 거래였다.
기억력 훈련을 할 때는 여느 기술향상 훈련, 이를테면 악기를 배울 때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에릭슨은 나한테 일렀다. 첫 숙제는 건물 구조를 모으는 일이었다. 본격적으로 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기억 궁전’을 되도록 많이 구축해야 했다. 옛 동무의 집도 방문했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도 들르면서 내 상상 속에 온전히 새로운 구조물들을 지어나간 다음, 각 구조물들을 제가끔 ‘기억의 방’ 속에 하나하나 넣었다.
내 코치인 쿡이 짜놓은 훈련일정은 밭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는 먼저 마실 수 있었으나 훈련 전에 신문 따위를 볼 수는 없었다. 책상 앞에 앉아서 10~15분 동안 시를 외우거나 졸업앨범에서 이름을 외우는 훈련을 해야 했다. 지하철을 탈 때에도 잡지나 책을 읽는 게 아니라, 한 쪽에 빼곡히 적힌 무작위 숫자나 트럼프카드 한 벌의 정렬순서를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했다. 동네에서 산책을 할 때에도 주차된 차에 붙은 번호판을 보고 차의 등록번호를 외웠다. 가슴에 이름표를 부착하고 있는 사람과 만날 때면 그 사람이 부담스러워할 만큼 이름표에 눈길을 주었다. 쇼핑 리스트도 종이에 적지 않고 머리로 외웠고, 전화번호를 받을 때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몇 달 동안 나는 내 머릿속에 수많은 ‘기억 궁전’으로 대도시 하나를 건설했고, 에릭슨은 내 데이터를 분석했다. 진척이 안 될 때면 에릭슨한테 전화를 걸어서 조언을 구했고 그럴 때면 에릭슨은 누구의 어떤 논문을 읽어보라고 나한테 일렀다.
훈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내 기억력은 정체에 빠졌다. 아무리 연습해도 좀체 나아지지를 않아서 트럼프카드 한 장 외우는 데 걸리는 시간 십 초의 벽을 깰 수가 없었다. 수렁이었고, 까닭을 알 수 없었다. “트럼프카드 시간이 정체되어 버렸어요.” 하고 에릭슨한테 우는 소리를 하니까, 에릭슨은 “타이핑 빨리 하는 법에 대한 논문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타이핑을 배울 때 첫밗에는 손가락 하나로 하는 ‘독수리 타법’(single-finger pecking)을 쓰다가 금세 두 손을 다 써서 하게 되고 결국에는 거의 생각할 것도 없이 기계적으로 손가락을 놀리게 된다. 이 지점에서 대부분 타이핑 기술은 멈추어 버린다. 높게더기(plateau)에 이른 셈인데,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우리가 늘 듣는 얘기가 “연습하면 완벽해질 수 있다.” (practice makes perfect)는 소리이고 대개의 사람들은 컴퓨터 키보드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하루 몇 시간이나 되는데도 어째서 타이핑 기술은 높게더기에 이르러 더 이상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못할까?
이 질문이 바로 두 명의 심리학자, 폴 피츠와 마이클 포즈너가 60년대에 답한 것이다. 피츠와 포즈너는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데에는 세 개의 층계가 있다고 했다. 먼저 “인지 단계”인데, 이 단계에서는 기술을 머리로 헤아리고 좀더 나아질 수 있는 전략을 짜게 된다. 둘째 단계인 “연상 단계”(associative phase)에서는 머리로 생각할 필요성이 줄어들고 잘못을 저지르는 횟수도 적어지면서 좀더 익숙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자동 단계”에서는 아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오토파일럿’에 놓고서 무의식적으로 기술을 발휘하게 된다. 대개의 경우 여기까지 이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매일의 반복적인 작업에 써야 하는 신경이 적으면 적을수록 중요한 일에 신경을 더 쓸 수 있게 되는 까닭이다. 기실 이 각각의 단계를fMRI로 보면 각 단계의 변화가 확연하게 보인다. 뇌에서 의식적 추론을 담당하는 부분의 활동이 점점 줄어들고 단계가 올라갈수록 다른 부분이 지배적이 된다. 이 셋째 단계까지 이르렀을 때 맞닥뜨리게 되는 높게더기를 “OK 높게더기”라고 일컬을 수 있을 터이다.
예전 심리학자들은 이 “OK 높게더기”가 사람이 내재적으로 갖고 있는 능력의 상한선이라고 여겼다. 1869년 프란시스 갤튼은 “유전적 천재성”에서 머리든 몸이든 훈련하다 보면 벽에 부딪게 되는데, 이 벽은 아무리 노력해도 깰 수 없다고 주장했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이다, 라는 소리다. 그러나 에릭슨을 비롯한 현대의 심리학자들은 길만 제대로 알고 그 길을 충실히 걸어가면 “OK 높게더기”를 벗어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갤튼이 말한 ‘벽’은 우리의 내재적 능력보다는 우리가 이 정도면 됐어, 하고 만족해버리는 수준과 더욱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연구 결과에서 밝혀진 것이, 어느 기술에서든 최상부에 자리잡은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모두 “OK 높게더기”에서 벗어나는 전략을 짜는데 이 전략은 대개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춘다. (1)특정한 기법에 레이저처럼 정밀한 초점을 맞추는 것 (2) 목표지향에서 일탈하지 않는 것 (3) 늘 즉각적 피드백을 받는 것.
예컨대 음악가들을 보면, 아마추어는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연주하면서 연습 시간을 흘려 보내지만 프로는 몹시 구차하고 사소하고 지겨운 연습을 되풀이해서 하거나 아주 어려운 부분만 강박적으로 반복해 연습한다. 피겨 스케이터를 봐도 톱클래스 선수들은 자신이 잘 못하는 점프를 반복해서 연습하는 데 반해 그저 그런 선수들은 제가 이미 잘 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다시 말해서 통상적인 연습을 아무리 해도 완벽해질 수는 없다는 소리다. “OK 높게더기”를 벗어나서 더 높은 곳으로 가려면 늘 자신의 한계라고 믿고 있는 선을 넘으려 애써야 한다는 소리다. 그처럼 애쓰는 과정에서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는 모양과 까닭을 눈여겨보고서 고칠 수 있는 전략을 세워 그 전략을 좇아야 한다는 소리다. 내 기억력을 높이는 데도 같은 자세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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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의욕을 북돋우려고 쿡 코치는 이소룡의 명언 하나를 이메일로 보내왔다. “한계는 없다. 높게더기는 있다. 그러나 그 높게더기에서 안주해서는 안 된다. 그곳을 벗어나 더 높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다 죽으면 어쩌냐고? 그럼 죽으면 된다.” 나는 이 문구를 ‘포스트잇’에 써서 벽에 붙여놓았다가 생각을 바꾸어서 찢어버린 다음 머릿속에 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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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글 앞쪽의 기억력 훈련에 대한 부분을 옮길까 하다가 대개는 알려진 사실이므로 이 부분을 옮겼는데, 혹시 기억력 훈련에 대해서 낯선 사람이 있으면 한번 훑어봐도 괜찮을 듯싶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에서 “일은 삶에서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는 까닭에 진정으로 만족하려면 일을 잘해야 합니다. 일을 잘하려면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세요.” 하면서 졸업생들을 독려하는데 이 문구를 보고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즐기는 일을 찾으라는 소리로 생각하지만, ‘즐기는 것’과 ‘잘하는 것’ ‘사랑하는 것’의 상관관계’는 대개 이렇다. 잘하지 못하면 즐기지 못한다. 즐기지 못하면 사랑할 수 없다. 물론 잘한다는 것은 즐긴다는 것의 충분조건이 아니고 즐긴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의 충분조건이 아니지만, 대개의 경우 필요조건이다. 여기에서 연마와 경쟁의 중요성이 나온다.
지겹고 구차한 반복된 연습과 경쟁에 참가해서 얻는 ‘피드백’이 없이는 나아질 수 없다. 잘난 인간들이 주장하는 교육 방법을 따라서 그저 ‘사랑’으로 가르치면 몇몇 천재들은 빛을 발하고 꽃을 활짝 피우지만 대개의 보통사람들은 기술 하나 습득하지 못하고 평생 동안 내 적성은 무엇인가, 고민하면서 죽을 때까지 자신이 즐기고 사랑하는 일만 찾다가 숨을 거둔다. 극도로 엘리트적인 교육 이념인 셈이다. 반면에 ‘연마’와 ‘경쟁’을 통한 피드백에 중점을 두는 교육은 수많은 사람들을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수준에서 탈피하여 더 높은 곳으로 이끈다. 다만,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 연마와 경쟁은 자발적이어야지 강압적이어서는 효과가 확 줄어든다는 점이다. 에이미 츄아도 이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는 것은 잘하지 못하면 즐길 수 없다는 것이고, 더욱 잘하면 더욱 즐길 수 있다는 명제이다. 이것은 루프를 이루어 즐길수록 더욱 연마하게 되고 이것은 다시 실력을 더욱 향상시켜서 더욱 즐길 수 있게 된다.
오늘로써 블로깅을 한 지 3년이 된다. 내일이 3주년이고 4년째가 시작되는 날이다. 애초 번역 연습을 시작할 때는 한 시간 걸리던 것이 이제는 같은 분량이라면 20분 정도로 단축되었는데(위 글은 23분 걸렸는데, 여기서 더 단축은 불가능하지 싶다. 앞으로는 같은 시간에 더욱 나은 질이 되는 데 초점을 두려 한다.), 아침에 번역할 글을 정한 다음에는 화면에 ‘스톱워치’를 띄워놓고서 시간을 잰다. 물론 한 일 년쯤 지난 다음부터는 덧글을 받지 않기 시작했으므로 피드백이 없어서 글쓰기 자체가 많이 는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시간 면에서는 엄청난 진보를 이룬 셈이다. 이 진보에서 가장 큰 구실을 한 것은 이 ‘재기’이고 스프레드시트에 매일 번역에 걸린 시간을 기록해 둔 다음 어떻게 하면 좀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과정이었다. ‘계량’ 그리고 그 분석에서 나오는 전략의 수립과 반복된 연습 (취약한 부분만 집중적으로)이 없이는 향상은 요원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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